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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자의 開口]우리가 영웅 박태환에게 너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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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 박태환은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일주일에 2번, 단국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물살을 가른다. 수영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박태환의 '불꽃' 레이스는 오늘도 계속된다.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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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를 앞두고 생각이 많았다. '어떤 기획으로 지면을 꾸밀까'라는 고민이 밀려왔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그 중 한 아이템의 주제가 '한국 아마스포츠의 미래를 말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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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임자를 찾아봤다. 이곳 저곳을 둘러봤다. 박태환이 떠올랐다. 한국수영의 영웅,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뒷전으로 밀렸다.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다.

"당연히 도와드려야죠"라는 답이 왔다. 본 기자는 박태환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담당 후배는 "의리 있는 친구"라고 했다. 바쁜 훈련스케줄에도 흔쾌히 시간을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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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가 넘어왔다. 읽어내려갔다. "아~", 미안하고 안타까운, 짧은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우리의 영웅에게 우리가 너무 못되게 대했다. 우리의 영웅을 너무 빨리 기억에서 지웠다. 담당 후배는 "이런 저런 속마음을 털어놓았는데 차마 글로 쓰지 못한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다"고 했다. 미안했다.

박태환은 지난달 23일 호주에서 돌아왔다. 6주간 자비훈련을 마친 뒤다. 누구는 "왜 비싼 돈을 들여서 해외로 나갔냐"고 할 지 모르겠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훈련장을 구하기 힘들다. 그나마 지금 서울체고와 현대자동차 사원체육관을 겨우 빌려서 훈련하고 있다. 훈련프로그램의 문제도 있고 해서 호주훈련은 그에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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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는 다른 상황이다. 런던올림픽 전만해도 후원사가 있었다. SK텔레콤이 도와줬다. 마음편히 수영에만 매달릴 수 있었다.

후원은 런던올림픽 직후 끊겼다.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뒤다. 은메달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영웅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후원사의 결정 배경은 잘 모르겠다. 아마 '1등을 못해서'가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 박인호씨는 "네가 열심히 노력해 번 돈을 재투자하는 것"이라며 아들의 어깨를 다독여준다고 한다. 그 말이 더 가슴 아프다. 세계 2위도 우리의 영웅에게는 '실패한 성적표'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영에서 어느 누구도 올라보지 못했다. 박태환 뿐이다. 당분간도 계속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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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포상금 박탈사건(?)이 있었다. 우리의 영웅을 한번 더 죽였다. 수영연맹의 말을 잘 안듣었던 것에 대한 '괘씸죄'의 냄새가 짙었다. 뭐, 윗 사람이 보기에 괘씸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윗 사람들이 너무 옹졸했다. 우리의 영웅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됐다. 박태환은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하니 괜찮아요. 하지만 먼저 이야기라도 해줬으면 좋았을텐데"라고 했다. 그렇지않아도 그동안 각종 포상금을 꿈나무 지원 등에 써왔었다.

최근에는 홈쇼핑 출연 논란이 있었다. 어린이 건강식품을 홍보했다. '박태환이 오죽했으면…'이란 동정여론이 일었다. 박태환은 그냥 웃었다. "돈 때문에 홈쇼핑까지 나왔다는 동정여론이 많더라고요"면서 "설령 돈이 없다고 해도, 어린이용 제품이고 건강기능 제품인데 확신없이 이름만 대충 걸고 하는 일이면 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5년 장기후원을 약속해준 중소기업의 제품이었다. 고민끝에 1회 출연에 합의했다고 한다. 의리를 택한 출연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 '홈쇼핑 논란'쯤이야 뭐"라며 웃었다.

그동안 우리의 영웅을 상품가치로만 평가했다. 인기만 따졌다. 그가 이룬 엄청난 역사, 그리고 땀방울을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우리의 영웅에게 우리가 참 너무했다.

외국인의 눈에도 그렇게 비쳤나 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하 WSJ) 아시아판이 박태환의 홈쇼핑 출연 이후 불거진 팬들의 격앙된 여론을 소개했다. 그 전의 일도 자세히 전했다. 한 미국의 네티즌은 '박태환을 미국으로 데려올 것이고 포상금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댓글까지 달았다.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일이 또 윗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창간 기념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수영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에 대한 질문이었다. "마이클 볼 감독님을 만났을 때 부터"라고 했다. "볼 감독님의 메인세트는 정말 힘들어요. 피도 토했고, 위액이 올라올 때도 있었죠. 죽을 것처럼 힘든 데도 묘한 희열이 있었어요." 그 말 그대로다. 죽을 것 같은 순간을 이겨냈다. 그렇게 이뤄낸 올림픽 금메달이다. 은메달이다. 우리가 너무했다. 윗 사람들이 너무 옹졸했다.

김연아의 화려한 복귀에도 축하를 보냈다. "정말 기뻤어요. 축하할 일이고…." 다음 말이 마음을 찔렀다. "근데 이상하게 시상대에 선 아사다 마오가 보이더라고요. 연아 없을 땐 1등이었을 텐데…. 저도 로마, 런던에서 밀려봤잖아요. 그 마음을 알죠." 우리의 영웅을 우리가 너무 아프게 했다. "너무 잘했어, 세계 2등은 엄청난 일이야"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그날 새벽까지 박태환은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였다고 한다.

우리가 너무 했다. 영웅의 탄생만 기뻐했다. 그 땀방울 가치를 간직할 줄 몰랐다. 지켜줄 줄 몰랐다. 그리고는 한국체육의 미래를 말했다. 역사도 못 챙기면서 말이다.

박태환은 지금도 물살을 가르고 있다. 후원사 없이, 괘씸하게 보는 윗 사람의 시선속에서, 그리고 팬들의 무관심속에서. 그의 마음속에는 누구에 대한 원망도 없다. '세계 정상도전'이란 목표만 있을 뿐이다.
신보순 기자 bsshi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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