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감히 은퇴경기를…."
한국농구의 거장 서장훈(39)은 지난달 19일 2012∼2013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을 끝으로 전설로 돌아갔다.
이날 열린 서장훈 은퇴식은 당초 의도와 달리 '판'이 제법 커졌다.
서장훈의 마지막 소속팀 KT가 각종 프로그램을 정성스럽게 준비한데다, 월드스타 싸이가 서장훈과의 의형제 친분때문에 깜짝 방문했기 때문이다.
서장훈은 KT에 공헌한 게 없기 때문에 쑥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지만 그를 떠나 보낸 농구팬들 입장에서는 훈훈한 이벤트였다.
여기에 또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서장훈의 은퇴는 더욱 거창하게 치러질 뻔했다.
KT 구단은 시즌 종료가 다가오자 서장훈의 은퇴식을 구상하면서 또다른 큰그림을 그렸다. 비록 한 시즌밖에 함께 하지 못한 선수이지만 한국농구 역사에 남는 인물을 그냥 보내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로 갈곳없는 서장훈을 영입한 권사일 KT스포츠 사장도 서장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래서 KT 구단이 한때 구상한 것이 기념 은퇴경기였다.
2004년 5월 2일 '농구대통령' 허 재(KCC 감독)의 은퇴경기를 떠올린 것이다. 당시 TG삼보(현 동부)에서 은퇴한 허 감독은 원주치악체육관서 서장훈 김승현 김주성 등 절친한 후배들과 함께 올스타전같은 은퇴경기를 치렀다.
당시 은퇴경기에는 허 감독을 축하하기 위해 농구계는 물론이고 체육계 인사가 총출동했다. 배구스타 장윤창, 체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여홍철, 높이뛰기 스타 이진택과 용산고 동창인 영화배우 박중훈, 이계진 17대 국회의원 등이 참가해 행사를 빛냈다.
허 감독이 서장훈의 은퇴식이 열리던 날 가장 먼저 추억으로 떠올린 것도 서장훈이 참가해줬던 은퇴경기였다.
당시 허 감독의 나이는 39세. 서장훈과 같았다. KT는 허 감독의 은퇴경기 사례를 들어 서장훈과 절친했던 은퇴-현역 선수를 초청해 은퇴경기를 치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무산됐다. 승부조작 의혹으로 위기에 빠진 농구판의 분위기 때문은 아니었다. KT가 서장훈 은퇴경기를 구상하다가 포기한 것은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나오기 훨씬 이전이었이 때문이다.
서장훈이 한사코 만류했기 때문이다. 서장훈 특유의 농구철학 때문이었다. 서장훈은 농구에 대해 몹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한다.
농구코트에서 만큼은 결코 장난스러운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서장훈은 이를 농구에 대한 진정성이라고 했다.
서장훈은 은퇴식 인터뷰때에도 "농구장은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무대가 아니고 치열하게 승부를 가리는 곳이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승부욕으로 팬들께 불편한 모습을 보였다면 사과드리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표현대로 버라이어티쇼를 감히 농구코트에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서장훈은 "프로농구 올스타전은 일조의 이벤트지만 KBL 정식행사로 정해진 것이다. 일개 선수인 나를 위해 은퇴경기를 한다는 것은 농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나의 농구에 대한 평소 소신에도 어울리지 않는 이벤트였다"고 말했다.
허 감독의 경우 '농구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농구 역사 최고의 스타라고 서장훈은 인정한다. 그런 대선배에 비하면 자신은 감히 비교될 수가 없다는 것 또한 서장훈의 솔직한 심정이다.
평생 땀을 흘려왔고 선수로 성장시켜준 신성한 코트를 놀이터처럼 뛰어다닐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KT는 농구에 대해 몹시 신중한 서장훈의 뜻을 꺾지 못했다. 대신 서장훈의 농구철학에 다시 한 번 감동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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