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면 피하고 싶지는 않다. 선수 시절 쌓아놓은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겠다." 2005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홍명보 A대표팀 감독(44)의 출사표였다.
A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그의 계약기간은 2년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과 2015년 호주아시안컵을 지휘한다. 계약기간이 밝혀지자 아쉬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청소년대표팀(20세 이하)부터 올림픽대표팀 감독까지 차근차근 준비한 지도자를 '원포인트'로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현역시절 쌓은 영광이 짧은 시간 속에 무너질까 걱정하는 시각도 보인다. 과연 2년의 의미는 뭘까.
스스로 선택한 채찍
홍 감독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브라질월드컵 본선과 호주아시안컵에서 철저하게 검증을 받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A대표팀은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다. 수많은 비난의 화살과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긴 계약기간이 안정감을 줄 수도 있으나, 팀을 이끄는 기간 내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시련과 영광에서 얻은 교훈이 '가시 면류관'을 쓴 또 하나의 이유다. 홍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감독 후보 1순위로 지목이 됐다. 그러나 "초등학교 감독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대표팀을 이끄느냐"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져 결국 낙마했다. 절치부심 뒤 나선 2009년 이집트청소년월드컵에서 8강행을 이끌었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을 수확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 신화를 썼다. 시련 속에 더 강해졌다. 스스로 쉬운 길을 택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제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홍 감독은 올림픽대표팀 재임 시절 선수들을 향해 "난 너희들을 위해 항상 등 뒤에 칼을 꽂고 다닌다. 너희들도 팀을 위해 등 뒤에 칼을 하나씩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감독이 책임진다는 철학을 담았다. 선수들은 오로지 목표를 향해서 뛰었고, 동메달 신화를 일궈냈다.
홍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나선 A대표팀의 모습을 바깥에서 지켜봤다. 태극마크 아래 하나로 뭉치는 모습은 없었다. 사분오열 됐다. 그가 그리는 미래가 아니다. 올림픽팀에서는 주전과 비주전의 경계가 없었다. 개인보다는 팀, 기량보다는 정신력이 우선이었다. 자율 속에 엄격한 룰도 존재했다. A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 기조가 예상된다. 강력한 카리스마는 2년이라는 계약기간에 투영됐다. 스스로 친 2년이라는 배수의 진은 향후 태극마크를 받아들 제자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메시지다.
2년 계약, 축구협회의 시각은
이번 선임 작업을 전면에서 지휘한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은 "차기 감독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협회 차원에서 배려할 것"이라고 했다. 홍 감독과 맺은 2년 계약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홍 감독을 향한 신뢰는 단단하다. 허 부회장은 "과거 외국인 감독의 경우 단발성으로 끝났다. 이제 한국 축구가 단발성을 지니면 안된다"며 "2년이란 시간이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홍 감독과 교감을 나눈 상태다. 기간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홍 감독이 품은 마음가짐을 믿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황보관 기술위원장도 "2년이란 계약기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월드컵과 아시안컵을 치르면서 기류가 달라질 수 있으나, 결격사유가 없는 2년 이후에도 한 홍 감독 체제에 무게를 실어준다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파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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