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전력과 분위기 이외의 변수가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곤 한다. 선수단의 단체 부상으로 위기에 빠진 전북이 그랬다. 한 선수의 의지와 투혼이 전북의 선수단의 정신력을 일깨웠다. 전북의 수비형 미드필더이자 '살림꾼'인 정 혁이었다.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정 혁의 오른 팔에는 녹색의 압박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지난 5월 11일 전남과의 K-리그 클래식 11라운드에서 경기 중 상대와의 충돌로 오른팔이 골절됐기 때문이다. 수술과 재활을 거친 그는 2주 전부터 팀 훈련에 합류했다. 2개월 가까이 경기에 나서지 못한 그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나 7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 17라운드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다. 중앙 미드필더 김정우 서상민 김상식이 부상으로 결장하고 권경원이 경고 누적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자 출전을 자청했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정 혁이 다 낫지 않았다. 지금 몸상태가 80~90%다. 하지만 본인이 의지를 보였다. 그 자리에 선수도 없고, 오늘 경기가 중요하니 나서겠다고 하더라"며 그의 의지에 혀를 내둘렀다. 중앙 수비수 임유환과 풀백 박원재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에서 수비력이 좋은 정 혁의 출전은 '천군만마'와 같았다. 깨진 공수밸런스의 균열을 메워줄 최적의 카드였다. 정 혁은 골절된 팔의 뼈가 다 붙지도 않은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팀을 위해 모험을 감행했다. 경기에 나서기 전 최 감독과 한 가지 약속을 했단다. 이제 막 회복한 팔이 충격에 약하니 태클을 안하고 경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정 혁의 의지에 전북 선수들도 함께 춤을 췄다.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자 포항의 패싱 축구에 맞서 한 발 더 뛰었다. 투톱으로 출격한 이동국과 케빈, 좌우 날개 박희도와 레오나르도가 수비 진영까지 내려워 강한 압박을 가했다. 정 혁은 이명주 김태수가 버티고 있는 포항의 중원에 '일당백'으로 맞섰다. 포항의 공격의 시발점인 중원에서의 패스 줄기를 연거푸 차단했다.
지난 3일 성남전에서 선제골을 허용하며 2대3의 패배를 당했던 전북은 포항 원정경기에서 먼저 기세를 올렸다. 몸 살기운으로 결장한 에닝요 대신 선발 출격한 박희도의 왼발이 빛을 냈다. 박희도는 전반 3분만에 상대의 문전에서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포항의 골망을 갈랐다. 전반 초반, 전북의 상승세는 이어졌다. 6분 뒤, 이동국이 노련한 슈팅으로 쐐기골을 뽑아냈다. 왼쪽 측면에서 날라온 이승기의 크로스를 왼발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시즌 11호을 완성했다. 포항전까지 4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이동국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K-리그 통산 최다득점 기록도 152골로 늘렸다.
반면, 선두를 질주하던 포항은 안방에서 골대 불운에 울었다. 0-1로 뒤진 전반에 이명주의 중거리 슈팅이 골대를 강타한데 이어 후반에도 고무열의 헤딩 슈팅이 골대를 맞아 득점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안방에서 0대2 패배를 헌납했다.
포항=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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