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보단 빨랐어."
명 투수 출신 지도자인 양상문 해설위원. 그는 아마추어 시절 리그를 평정한 좌완 강속구 투수였다. 하지만 당시 대부분 특급 투수의 숙명을 그도 피하지 못했다. 너무 많이 던졌다.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분필 같다는 어깨. 혹사 속에 강속구를 잃었다. 프로 입단 후 생존을 위해 스타일을 바꿨다. 제구력과 심리를 읽는 명석한 두뇌 피칭으로 상대 타자의 예봉을 피해갔다. 빠른 볼로 승부하는 투수나 제구력과 변화구로 승부하는 투수의 마음을 두루 이해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지도자.
제구력이 재조명 받고 있는 시기. 여러모로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는 두산 투수 유희관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양 위원은 유희관에 대해 가장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적임자다. '위원님과 비슷한 스타일 아닙니까?' "내가 걔보단 (공이) 빨랐지"라며 껄껄 웃은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양 위원은 유희관에 대해 "리그에서 가장 제구력이 좋은 투수 중 하나"라고 단언한다. 그 이유는? "보통 투수가 몸쪽과 바깥쪽 한쪽 제구만 되도 제구력이 좋다고 하는데 희관이는 양쪽 제구가 거의 다 되는 편"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최고 140㎞를 넘지 못하는 패스트볼 스피드. 큰 문제는 없는걸까. 사실 '빠르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유희관의 롱런 가능성에 편견과 회의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 전망은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희망이 앞선다. 주로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부정적인 반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긍정적이다. 특히 유희관을 상대해 본 타자들은 "앞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의견을 모은다.
그렇다면 유희관은 스피드를 늘릴 수 있을까. 양상문 위원의 답은 "예스"다. "릴리스 포인트를 앞으로 빼면 어느 정도 스피드를 늘릴 수 있다"는 설명. 하지만 신중할 필요가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 스피드도 예외는 아니다. 양 위원 역시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며 "그만큼 위험 부담이 따를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스타일 변화는 즉흥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향후 과제도 던졌다. 물론 스피드 업은 아니다. 다양성의 강화다. 유희관은 체인지업을 잘 던진다. 오른손 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며 떨어진다. 양 위원은 이 체인지업과 반대 궤적 구종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슬라이더, 커브 등 (오른손 타자) 안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구종을 개발해야 합니다. 던지기는 해도 구사율이 많은 건 아니잖아요."
타고난 손가락 감각과 유연성. 여기에 두뇌와 성실함도 갖춘 유희관. 선발 등판 다음날 그는 보통 투수들보다 훨씬 오랜 시간 러닝을 한다. 뛰고 또 뛴다. 안정된 하체 밸런스는 그의 투수 생명이 걸린 제구력의 원천이다. 올시즌 유희관이 일으킨 센세이션은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느림'의 한계를 땀으로 극복하고 있는 작은 거인. 야구를 넘어 보통사람들의 세상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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