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와 KT의 프로-아마 최강전 8강전이 열린 19일 잠실학생체육관. 평일 오후 4시 경기였지만 3000여명에 가까운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 양팀의 경기를 관전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팬들의 반응이었다. 상식대로라면 상대적으로 자주 접할 수 있었던 프로팀 KT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커야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고려대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보여줄 때 마다 더욱 뜨거운 함성이 터져나왔다. 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의 열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최근 국내 프로농구장에서는 듣기 힘들었던 '진심'이 가득 담긴 응원의 환호와 탄성이었다. 이번 대회 고려대 뿐 아니다. 돌풍의 주역 경희대의 경기 역시 팬들의 관심이 매우 높다.
팬들이 원하는 건 스타
고려대와 경희대의 공통점이 있다. 한국 농구의 미래를 짊어질 신예 스타들이 있다는 것이다. 고려대 이종현, 경희대 김종규 김민구는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뛰며 팬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 뿐 아니다. 고려대에는 '현주엽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듣는 만능 센터 이승현이 있다. 외곽에 박재현 문성곤 이동엽은 화끈한 플레이 스타일과 함께 '꽃미남' 외모까지 갖춰 패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경희대에는 김종규와 김민구 이외도 대학 최고의 가드 두경민이 버티고 있다. 중국 출신의 귀화 센터 우띠롱의 플레이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국가대표 한 두명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됐지만, 나머지 선수들도 충분한 스타성을 갖췄다. 특히, 선수들 각각의 캐릭터와 플레이 스타일이 확실해 경기를 한 번 지켜본 팬들이라면 그들의 매력에 빠져들기 쉽다.
반대로 프로팀을 살펴보자. 고려대와 경기를 치렀던 KT의 경우 선수 소개 시 국가대표 슈터 조성민의 이름이 나올 때만 큰 환호성이 터졌다. 농구를 정말 관심있게 지켜보는 팬들이 아니라면, 베테랑 송영진 정도를 제외하고는 다른 선수들의 이름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는 선수구성이었다. 한국프로농구는 대부분의 팀들이 외국인 선수들 위주의 플레이를 구사한다. 경기를 봐도, 외국인 선수나 몇몇 에이스급 선수들의 플레이만 뇌리에 남지, 나머지 국내 선수들은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힘든게 현실이다.
조금은 어설퍼, 그래서 더욱 매력이 있다
재밌는 사실은, 이 대학 두 팀의 전력이 프로팀들에 비하면 완전치 않다는 것이다. 공-수 모두에서 조직적인 움직임이 부족하고 어설픈 플레이도 많이 하고 있다. 고려대 이민형 감독 스스로 "SK, 모비스 등 강팀들과 상대한다면 우리도, 경희대도 승리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냉정히 진단했다. SK와 모비스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프로팀들에 비해 선수층도 두텁고, 노련한 선수들이 많아 젊은 선수들이 선배들의 플레이에 말려들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승패보다는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농구를 보는 자체가 즐거운 듯 하다. 프로 선수들 처럼 완벽한 조직 플레이 속에 슛 찬스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경기 템포를 조절하지 못해 안정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흥분해 속공을 연결하다 실책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 거침없는 당돌함에 보는 팬들의 속이 상쾌해진다. 10번의 공격 중 7~8번은 외국인 선수들의 포스트업이 이어지는 프로농구에 길들여진 팬들의 눈길을 돌릴 만한 충분한 요소다. 단적으로, 고려대와 KT의 경기 막판 가드 박재현의 패스를 이종현이 앨리웁 덩크로 마무리 시켰다. 체육관의 열기는 최고조로 달아올랐다. 대학생 선수들의 패기가 만들어낸 기가 막힌 명장면이었다. 어쩌면, 팬들은 유망주 선수들이 프로 무대에 가기 전, 마지막으로 보여줄 수 있는 다이내믹하고 신바람 나는 농구 자체를 즐기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선수들이 프로에 진출한다면 현재 프로농구 스타일에 적응을 해야해 지금의 플레이 스타일을 잃을 수 있다. KT의 장재석이 좋은 예다. 대학 무대를 호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수. 당연히 신인드래프트 1순위 몫은 그의 차지였다. 하지만 프로에 와서는 운동능력이 좋은 평범한 센터로 전락하고 말았다. 국내 프로농구가 꼭 풀어내야 할 숙제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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