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의 재발견!'
선발과 불펜 투수의 역할과 성격은 분명 다르다.
선발은 가능하면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한다. 따라서 모두 투구에 전력을 다할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1~2점에 크게 흔들려서도 안된다. 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하면 비교적 잘 던졌다며 퀄리티 스타트라고 칭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불펜 투수들은 주로 승부처에서 투입되기 때문에 1구 1구에 온 힘을 싣는다. 불펜에서 허용한 안타 1개는 때론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많은 공을 던지지 않아도 되지만, 거의 매 경기 대기를 해야하는 점에서 피로도는 상당하다. 현대 야구에선 불펜 투수들의 공 갯수와 출전 경기수를 잘 조절해주는 것이 강팀의 조건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큰 차이점으로 인해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을 제외하곤 역할을 뒤바꾸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그런데 22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NC전에선 양 팀 모두 새로운 시도를 했다. 넥센은 오재영, 그리고 NC는 이민호 등 주로 셋업이나 마무리를 전문으로 하는 투수들을 선발 자원으로 투입했다.
오재영은 지난 2006년 4월29일 잠실 LG전 이후 무려 7년을 넘긴 2672일만에 선발로 마운드에 섰다. 데뷔 첫 해였던 2004년 선발로 나와 10승9패를 거두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던 오재영은 2005년 1승11패로 극도의 부진에 빠진 후 2006년 초반부터 아예 불펜에서 셋업맨 혹은 왼손 타자를 상대하기 위한 원포인트로 기용되기도 했다. 김영민과 김병현 등 선발 자원들이 모두 2군으로 내려갔기에, 넥센 염경엽 감독으로선 고육지책의 카드였다.
1군 데뷔 첫 해인 이민호는 주로 마무리로 기용됐지만, 위력적인 구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며 자주 경기를 내주곤 했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NC 김경문 감독은 "이민호는 NC의 미래다. 마무리 경험을 시켜봤으니 선발이 일찍 무너질 경우 롱 릴리프, 즉 사실상의 선발로 많은 이닝을 맡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NC 선발이었던 노성호가 1회부터 2피안타 2볼넷으로 2실점하며 흔들리자 김 감독은 노성호를 ⅓이닝만에 내리고 일찌감치 이민호를 투입했다.
기회를 잡은 두 투수는 약속이나 한듯 호투를 했다. 오재영은 1회 조금 흔들리며 1실점(비자책)을 했을 뿐 이후 3회부터 5회까지 모두 삼자범퇴로 끝내는 등 5이닝 2피안타로 버텨냈다. 투구수도 76개로 효과적이었다. 최고 구속은 140㎞에 그쳤지만,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적절하게 곁들이며 노련미로 NC 타자를 잘 처리했다. 경기 후 오재영은 "내가 어떤 유형의 투수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 타자를 압도하기 보다는 타이밍을 뺏으려 노력했다"며 "너무 오랜만에 선발로 나와서 1회 긴장을 한 것 같다. 어쨌든 후반기 늦게 선발로 올라왔는데, 2004년 때 느꼈던 감정과 경험을 한번 더 느끼고 싶다. 앞으로 컨트롤과 완급 조절로 내 피칭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민호 역시 1회 1사 2,3루의 위기에서 김민성과 유한준을 모두 범타로 처리하며 추가 실점을 막는 등 5⅓이닝동안 5피안타를 허용했지만 넥센 박병호에게 6회 맞은 솔로포가 유일한 실점일 정도로 기대 이상의 피칭을 선보였다. 주로 직구를 던졌지만, 넥센 타자들은 효과적으로 이민호의 공을 공략하지 못했다. 타이트한 상황에서 던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큰 부담없이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것이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이민호는 "롱 릴리프든 마무리든 팀이 원하는대로 준비를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최근 경기서 마무리로 나왔지만 팀 승리를 지키지 못해 미안해서 오늘 무실점으로 막으려 했는데 조금 아쉽다"면서도 비교적 만족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들의 재발견에 두 팀의 감독들도 승패와 상관없이 흡족한 하루였을 것이다.
목동=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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