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는 전장이다.
속고 속이는 두뇌 싸움과 예측불허의 기술에 관중들은 탄성으로 화답한다. 충돌 또한 불가피하다. 때론 부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지만 숙명이다.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있다. 유니폼이 달라도 축구는 공통분모다. 동업자다. 서로를 아껴주고 보호해야 한다. 성적지상주의에 함몰돼 이성을 잃는 순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재앙 뿐이다.
프로 3년차인 울산의 수비형 미드필더 최보경(25)의 거친 플레이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고의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태클에도 정도가 있다. '잘못된 버릇'으로 상대는 선수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사단은 지난해 이미 벌어졌다. 11월 15일이었다. 울산이 서울 원정길에 올랐다. 후반 35분 교체 투입된 이재권(26)이 몇 분 지나지 않아 최보경의 태클에 쓰러졌다. 서울이 3-0으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승부의 추는 기울었다. 하지만 이재권은 최보경의 태클에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오른 정강이 비골 골절에 이어 발목 삼각인대가 파열됐다. 한동안 목발에 의지했다. 재활 치료와 회복에 6개월이 소요됐다. 올여름 훈련을 시작했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있다. 그는 한 달여 밖에 남지 않은 올시즌 단 1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최보경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러나 20일 다시 한번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4강 일정으로 연기된 서울-울산전이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최보경은 팀이 2-0으로 리드하고 있는 후반 41분 교체 투입됐다. 울산의 마지막 교체카드였다. 그러나 두 눈을 의심케하는 '살인 태클'이 또 나왔다. 후반 45분이었다. 그는 위험지역도 아닌 센터서클에서 고요한(25)이 볼을 잡자 두 발로 백태클을 가했다. 그의 축구화가 향한 곳은 볼이 아닌 오른 정강이 뒤쪽이었다. 고요한은 쓰러졌고, 고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이재권 사태'가 재발됐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서울은 26일 광저우와 ACL 결승 1차전을 치른다. 고요한은 서울의 주축이다. A대표팀에도 꾸준하게 발탁되고 있다. 홍명보 감독은 이청용(25·볼턴)의 백업으로 고요한을 활용하고 있다.
도가 지나친 플레이는 주심이 제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휘슬을 잡은 심판은 파울에 관대해도 너무 관대하다. 바로 앞에서 펼쳐진 아찔한 장면이었고, 당연히 경고감이었다. 그러나 그는 휘슬을 부르는 것으로 그쳤다. 서울 입장에선 오히려 휘슬을 부른 것이 고마울 수도 있다. 2012년 6월 17일 서울의 고명진(25)은 포항과의 원정경기에서 공중볼 경합을 하다 갈비뼈 2개가 부러졌다. 하지만 그의 휘슬은 침묵했다.
태클도 축구의 기술이다. 공교롭게 이날 한 시대를 풍미한 이탈리아 최고의 수비수 알레산드로 네스타(37)가 은퇴를 발표했다. 그는 태클의 교본으로 통했다. 반칙없이 깔끔하게 볼을 빼앗는 태클에 찬사가 쏟아졌다. 상대 선수들도 네스타의 태클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당한 태클은 박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도를 넘는 태클은 선수 보호차원에서도 근절돼야 한다. 선수는 선수가 지켜줘야 한다. 걸어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많이 남은 최보경이 가슴속에 새겨야 할 부분이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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