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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⑭]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아이 둘 낳은 국내 최초 엄마 발레리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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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은 국내 최초의 엄마 발레리나로 무용수의 길을 개척했다.사진제공=몽락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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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둘 낳은 국내 최초의 엄마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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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국에서 프리마돈나로 주역에 섰는데 갑자기 결혼을 하십니다.

최-발레하면서 너무 고독했고, 항상 자기와의 싸움이었어요. 여름 방학이면 언니들하고 합숙하는데 저를 표현할 곳이 없었어요. 선생님한테 예쁨 받으면 항상 왕따를 당했어요. 항상 좋은 자리에 있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같이 밥 먹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항상 자기 자신과의 대화 밖에 안했어요. 그래도 발레의 매력을 정말 느꼈기 때문에 결혼할 때까지만 참기로 했어요. 결혼과 동시에 발레 안 한다고 결심했어요. 혼자 사는 생활이 너무 외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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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렇게 유머 감각이 있는 분이 혼자 밥 먹고, 너무 속상해요. 밥 먹으면서 재치, 유머 해야 하는데요.

최-발레 계는 유머 해봤자, 동기들이 '네가 좋은 자리 있으니까 우리를 우습게 보는 거냐?' 이런 식으로 밖에 안 봐요. 진심으로 그분들하고 재미있게 지내고 싶었는데. 1984년에 결혼 하고 떠났어요. 진짜 다 던지고 갔어요. 미련 없었어요. 그때부터 발레복 입지도 않았고, '보통 사람들이 이렇게 생활 하는구나' 알았죠. 금방 아기도 생겼고, 열심히 먹어서 80㎏까지 갔어요. 살찌는 제 자신이 정말 예뻤어요. 그렇게 살아보지 못 했거든요. 열 달 내내 80㎏이었어요. 그때는 남편이 제일 잘 해줄 때잖아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다시 발레로 돌아갈 거란 생각이 전혀 없었죠. 정말 행복했어요. 입덧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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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동안 몸이 얼마나 먹고 싶었겠어요. 그런데 돌아왔어요. 미련 없이 떠났는데.

최-아기를 낳으면 예전처럼 47㎏까지 떨어질 줄 알았어요. 아이를 낳았는데, 3㎏ 빠졌더라고요. 그때부터 너무 슬픈 거예요. 호르몬 밸런스도 달라졌고요. 단 둘이 유학 중이었기 때문에 가족이 아무도 없었어요. 오로지 둘이서 생활하고 아기도 키워야했기 때문에 너무 부담이 컸어요. 모든 게 스트레스가 됐어요. 30분이라도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게 발레더라고요. 뉴욕에 있었는데 동네 레크레이션 센터 가서 30분만하자 하면서 바 붙잡고 자기 밸런스가 어디에 있는지 찾는데 3개월 걸렸어요. 행복했어요.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요. 발레리나가 되자고 연습실 갔으면 77㎏이었기 때문에 더 우울증에 걸려서 일어나지 못 했을 거예요. 그 30분이 정말 좋은 거예요. 그렇게 3개월 정도 되니까 50㎏ 정도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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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30분씩 3개월 해서 50㎏이요?

최-연습실에서 30분하고 집에 오면 에너지가 생기니까 마루 닦고, TV 에어로빅 따라하고 뭐든지 몸을 움직였어요. 그렇게 하는 게 즐거웠어요. 30분이라도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기 때문에 행복했어요. 아기웃음 보면서 행복지수도 올라가고요. 아기를 키울 수 있는 행복감과 자기 자신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의 밸런스가 좋았어요. 조금씩 살도 빠져가고, 에너지가 생겨난 거 같아요.

박-아기를 키울 때 저도 경험을 했지만, 엄마가 스트레스 받고 힘들면 예쁜 아이도 예뻐 보이지 않아요. 엄마가 자기 시간을 찾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을 찾으면 아이도 더 예뻐 보이고요.

최-우리 단원들한테도 그래요. 일찍 연습 마치고 자기 시간을 갖아라. 5시간 연습 필요 없고, 3시간 집중하면 100배 낫다고 해요. 그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면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데, 24시간 거기에 빠져 있으면 못하죠. 저는 제 경험상 후배들도 결혼하면 좋겠어요. 한국 와서 보니까, 아기 낳고 다시 무대에 선 사람이 제가 처음이더라고요.

박-국립발레단 룰이 있었잖아요. 결혼도 결혼이지만, 아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룰을 깼어요, 처음으로.

최-아기 낳고, 미국에서 2년 반 정도 연습하니까 옛날보다 춤이 더 잘 됐어요. 임성남 단장님께 '옛날보다 더 좋은 거 같다'고 하니까 돌아오라고 하셔서 다시 왔어요. 정말 즐거웠어요. 예전보다 더 활동할 수 있겠다 생각 했는데, 집에서 둘째를 낳아야 된다고 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 둘째를 가지고 또 80㎏으로 쪘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임 선생님이 '안 된다. 국가를 위해 발레단에 있어라'하셔서 중간에서 많이 고민했지만, 일단 결정을 하면서 뒤를 안 봐요. 그래서 둘째를 낳자 마음먹고, 그렇게 80㎏가 됐죠.

박-첫 아기 낳고, 1년 반 만에 예전 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발레단에 돌아왔는데, 1년 정도 뒤에 또 아이를 가진 거죠. 발레단 입장에선 충격이잖아요.

최-임성남 선생님이 우리 남편한테 편지를 보내서 '절대로 안 된다'했어요. 제가 사표 몇 번이나 드려도 '안 돼'해서 사무실에 놓고 나왔어요. 선생님 마음 아프게 해드린 게 너무 죄송했어요.

박-그렇게 둘째를 낳았어요. 그리고 발레단에 또 돌아오셨죠. 이건 정말 기적 같은 일 아닙니까.

최-둘째 낳고 동네 아파트에서 학원을 했어요. 잘 됐었어요.

박-국립발레단으로 다시 돌아갈 거란 생각 못하고 학원 차리셨구나.(웃음)

최-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최태지 발레 스튜디오인데 오전에는 에어로빅 선생님, 오후에는 애들 가르치고 했는데 정말 잘 됐었어요.(웃음) 그런데 임성남 선생님이 다시 오셨어요. '네가 필요하다'며 몇 번 오셨어요. 제가 사람이 그리웠어요. 친정도 일본에 있고, 저 혼자 있었고요. 이렇게 저를 필요로 하는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서 다시 온 거죠. 다시 발레리나로 이름을 내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아기 하나 낳고, 무대 다시 서는 사람도 없는 시대에 아기 둘 낳고 어떻게 갑니까. '제가 필요하다'라는 마음이 고마워서 다시 들어갔죠.

박경림과 최태지 단장은 세대를 넘어 '대한민국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사진제공=몽락 스튜디오
[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⑭]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 (3)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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