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용하는 이름.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명칭과 충돌한다면? 과연 어디까지 허용될까.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4월 종영한 SBS 인기 드라마 '야왕'. 극중 '백학재단'이란 비리 재단이 있었다. 공교롭게 같은 명칭을 가진 현실의 재단이 문제를 삼고 나왔다. 드라마 때문에 이미지가 손상됐다며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하지만 패소했다.
연합뉴스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배형원 부장판사)는 백학재단이 '야왕' 제작사 베르디미디어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밝혔다. 영안모자 백성학(70) 회장이 2008년 설립한 백학재단은 국내외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복지재단. 하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백학재단은 유력 대선후보 정치자금 지원을 위해 설립되고 정치계와 유착해 비리를 자행하는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됐다. 극중 백학재단을 설립한 백학그룹 회장 이름도 공교롭게도 백성학 회장과 유사한 백창학이었다.
재단 측은 드라마가 한창 방영 중이던 지난 3월 "드라마 인기와 파급력을 고려할 때 일반 시청자들이 백학재단을 비리재단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해 사회적 평가가 저하된다"며 명칭 사용을 중지하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당하자 1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재단 측은 "원작 만화에 등장하는 재벌그룹은 KDC로 드라마에서 굳이 재단 명칭을 백학으로 지을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드라마 전체 줄거리에서 재단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고, 만화를 원작으로 한 허구임이 방송 전부터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며 "일반 시청자들이 원고 재단을 드라마처럼 비리 재단이라고 오인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제작사가 의도적으로 재단 명칭을 동일하게 사용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드라마 제작자들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가 당연히 있지만 실제로 동일한 이름의 사람이나 단체가 존재하는지 일일이 조사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예술의 자유를 지나치게 위축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 문화 콘텐츠에 영향을 미칠 판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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