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이 넘었다. 그의 프로필에 나온 91년 연극 '동승'부터 데뷔시점을 계산하면 말이다. 그동안 단역부터 존재감 없는 조연, 존재감 있는 조연, 주조연, 주연까지 꾸준히 밟아왔다. '초록물고기', '넘버3',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괴물', '밀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 '의형제', '설국열차', '관상'에 이르기까지 화려하다. 또 이창동 김지운 강제규 박찬욱 봉준호 한재림 등 그와 작업하지 않은 거장이 없었다.
더는 오를 곳이 없어보였다. 그런 그가 '변호인'은 꼭 선택해야 할 작품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아무리 톱배우라해도 역사적 사건의 중심 인물 역을 맡는다는 게 쉬운 선택은 아니다. 게다가 모티프가 된 노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았다. 여전히 지지와 반지지 세력이 뚜렷하게 갈리는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 자칫 유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부담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강호는 '변호인'을 맡았고,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를 넘어 대중적 공감을 이뤄내며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놀랄만한 성공. 그 뒤에 송강호의 힘이 있다.
송강호는 정치적인 인물을 소재로 한 부담감이 큰 영화를 보다 대중적인 인물로 승화시키려 애썼다. 노력은 성공적이었다. 극 중 80년대 초 부산을 배경으로 학벌도 빽도 없지만, 사업 수완 하나는 기가막힌 속물 세법 변호사 송우석을 맡아 송강호는 다소 천박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을 표현해 냈다. 돼지국밥집 아줌마(김영애)의 선량한 아들 진우(임시완)가 억울한 용공조작사건에 휘말리며, 인권 변호사로 변신하는 대목에서 송강호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상식적 사회에 대한 보편적인 분노를 담아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송강호는 가난과 자수성가, 모성애, 권력, 정의 등 보편적인 코드들은 수위적절하게 연기하며 특정 인물 영화에서 보다 대중적인 영화로 만들어냈다.
송강호는 인터뷰에서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잊고 있던 가슴 한 켠의 정의를 보여주고 싶었다. 송우석은 변호사 이기 전에 평범한 시민이다. 국밥집 아주머니와 인간적 관계도 있었지만 상식이 통하지 않는 비상식적 사회에 대해 분노했던 것 같다. 그런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중점을 뒀던 부분을 설명했다. 송강호가 '변호인'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그 의미와 뜨거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단언컨대 그의 연기는 최고였다. 송강호는 '천만관객' 앞에 나설 자격이 충분한 대배우임을 다시 한번 스스로 입증해냈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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