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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가 벌어진 밴쿠버 리치몬드 올림픽 오벌, 관중은 이미 퇴장했다. 혈전을 마친 대부분의 선수들도 숙소로 돌아갔다. 경기장은 감동을 뒤로한 채 적막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는 떠날 수 없었다. 취재진을 피해 홀로 경기장 한 구석에 자리를 했다. 올림픽 메달을 향한 16년간의 도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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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36·서울시청)의 올림픽 드림은 2010년 밴쿠버올림픽(캐나다)이 끝이 아니었다. 1991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가 올림픽과 처음 만난 것은 16세 때였다. 1994년 릴레함메르(노르웨이)였다. 1998년 나가노(일본),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미국), 2006년 토리노(이탈리아), 2010년 밴쿠버를 지켰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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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이 올림픽 신화다. 6번째 올림픽 출전은 한국 최초의 기록이다. 1978년 3월생인 이규혁은 여자 선수 중 최고령인 컬링의 신미선(1978년 4월생)보다 생일이 한 달 빠르다. 최고령 선수다. 가장 어린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기대주 박소연(17·신목고)보다 무려 알아홉 살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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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신적 지주'로 소치에서 함께 호흡한다.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4년 전에는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새로움도 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스피드스케이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선후배 간의 유대감도 예전만 못하다. 여전히 그는 '선수 이규혁'이다. 메달 전망을 떠나 늘 그랬듯 정상을 꿈꾼다.
더 이상 4년 후는 없다. 소치는 선수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무대다. 이규혁은 "더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만의 편안함이 있다. 끝을 예상하고 준비했으니 많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예전에는 올림픽 출발선만 생각했다면 지금은 끝나고 뭘 할지,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떠올린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규혁은 한국 빙속의 찬란한 유산이다. 그는 화려한 피날레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소치는 과연 어떤 추억을 선물할까. 결전만 남았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