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m는 '스피드스케이팅의 마라톤'으로 불린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가장 긴 거리를 뛰는 종목이다. 단순히 지구력만으로 도전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순간적인 스피드도 필요하다.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1만m 금메달을 거머쥔 요리트 베르그스마의 후반부 랩타임은 29초대였다. 신체 구조상 키가 크고 다리가 긴 유럽계 선수들은 얼음판을 밀 때 가속도가 더 붙어 많이 뻗어나갈 수 있다. 체구가 작은 아시아 선수들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 유럽 선수들이 얼음판을 1번 밀때 아시아 선수들은 2번 미는 셈이다. 그래서 1만m는 유럽 선수들의 전유물로 불렸다.
이승훈의 세계 4위가 값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승훈은 19일(한국시각) 러시아 소치의 아들레르 아레나 스케이팅 센터에서 열린 2014 소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만m 경기에서 13분11초68로 4위에 올랐다. 기대했던 올림픽 2연패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의 도전은 실패가 아니다. 애초부터 힘든 싸움이었다. 밴쿠버에서 거둔 성과가 기적이었다. 이승훈은 유럽과 북미의 거인들 틈바구니 속에서 외로운 싸움을 펼쳤다. 실제로 아시아 선수들 중 이번 1만m에 도전장을 내민 선수는 이승훈이 유일했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일찌감치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일본 조차도 출전 선수가 없었다. 1만m 종목에 선수를 출전시킨 국가도 9개에 불과했다.
이승훈은 정상급 스케이팅 실력을 과시했다. 인코스에서 출발한 이승훈은 2800m까지 속도를 높이며 레이스를 주도했다. 3분37초36의 기록은 먼저 올림픽신기록을 작성하고 레이스를 마친 요리트 베르그스마(12분44초45)보다 좋았다. 그러나 4400m부터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선두권과 2초 이상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7600m까지 동메달이 가능한 3위 밥데용보다 나은 기록을 유지했지만, 막판 체력이 더 떨어지며 고개를 떨궜다. 그의 위에는 이번 올림픽에서 어마어마한 파워를 과시 중인 네덜란드의 오렌지 삼총사 뿐이었다. 그의 밑에는 그보다 수십cm가 큰 유럽선수들이 10명이나 있다.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 이승훈 덕분에 아시아권에서는 유일하게 1만m 종목을 응원하며 지켜볼 수 있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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