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59.' 한순간 눈을 의심했다. 잠시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21일, 새벽에 눈을 떴다. 김연아의 연기를 보려고 알람을 맞추어 놓았는데 조금 더 잤다. TV화면 아래에 그 때까지의 순위가 나왔다. 1위 쇼트니코바 224.57점. 이런 세상에. 김연아의 세계신기록(228.56점)과 4점차 밖에 나지 않았다. '해도 너무 했구만.' 쇼트니코바의 연기는 보지 못했다. 안봐도 '뻔할 뻔'자였다. 점수퍼주기, 다 예상했었다.
김연아가 등장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지막 연기, 은퇴 무대였다. 뛸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우리의 여왕은 실수가 없었다. 점프는 완벽했다. 연기는 예술이었다.
음악이 끝났다. 어느새 눈을 뜬 와이프가 박수를 쳤다. 눈물이 났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커졌다. "완벽한 연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내 "점수가 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참 나, 나쁜 예상은 이상하게 틀리지 않는다. 총점 219.11. 쇼트니코바에게 밀렸다.
휴~. 뭐라 표현할 말이 없었다. '이 나쁜XX.' 욕만 나왔다.
우리의 네티즌들, 어떤 사람들인가. 당연히 난리가 났다. '금메달을 빼앗겼다'고 외쳤다.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외국 언론도 가만있지 않았다. '잘못된 판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영국 BBC 중계진도 김연아의 금메달을 예상했다. 연기 막바지에 "금메달일 것이다. 흠잡을 곳이 없다"고 했다. "관중들도 우리의 의견(금메달)에 동의할 것이다"며 "믿을 수 없다. 대단하다. 이보다 더 나은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점수가 나온 뒤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금메달이 아니군요." 잠시 뒤 나온 반응이었다.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2연패의 전설 카타리나 비트는 "이해할 수 없고 분노를 느낀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결과에 대해 토론없이 지나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선수들은 다 안다. 누가 금메달인지를.
김연아는 의연했다. "마지막 연기에 만족한다"고 했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모두 실수없이 성공적으로 마쳐 홀가분하다. 전에도 편파 판정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때마다 저보다 주변에서 더 열을 내더라." 미소를 보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 주목받는 많은 대회여서 더 그런 것 같다. 난 그것에 대한 아무 미련도 없다. 끝났다는 것에 만족한다. 잘했기 때문에 만족한다. 오로지 금메달을 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120점을 줬다.
다시 한번 테이프를 돌려보자. 김연아는 프리스케이팅 마지막 순서로 나섰다. 소트니코바의 엄청난(?) 점수는 큰 부담이었을 거다. 하지만 여왕은 떨지 않았다. 피겨인생의 마지막을 수놓은 프로그램 '아디오스 노니노'에 몸을 맡겼다. 17년의 세월과의 이별이었다. 빙판위에서는 나비가 펄럭였다. 손짓 하나, 시선 하나에 진한 감동이 전해졌다.
그녀의 연기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울림이다. 피겨의 불모지,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었다. 국민들은 그녀의 점프에 같이 하늘을 날았다. 모든 것을 담은 표정에 함께 웃고 울었다. TV앞에서 박수를 쳤다. 환호성을 질렀다. '클래스가 다르다'는 평가는 부족하다. 감동이고, 희망이었다.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클래스였다. 이런 그녀에게 누가 점수를 매길 수 있을까. 누가 그녀의 연기를 평가할 수 있을까. 219.11점? 그 점수 가져가라. 줘도 안갖는다. 그녀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그냥 우리의 마음이 안다. 그냥 우리의 감정이 느낀다.
여왕의 은퇴무대다. 진흙탕 속에 빠져들고 싶지 않다. 축하하고, 감사해고, 또 축하하고 감사해도 모자랄 판이다. 금메달? 그냥 가져가라. 줘도 안먹는다.
신보순기자 bsshi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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