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잘 됐다."
KIA가 야심차게 뽑은 외국인 마무리 투수 하이로 어센시오가 무너졌다. 그러나 선동열 감독은 오히려 "잘 됐다"고 말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어센시오는 15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의 첫 개장경기로 열린 두산과의 시범경기에서 4-4로 맞선 9회에 나와 안타 2개와 볼넷 1개로 2점을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시범경기에서 첫 번째로 나온 실점이었다. 앞선 두 차례 등판에서 어센시오는 점수를 주지 않으며 믿음직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날 구위는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첫 상대인 오재원에게 직구를 던졌다가 초구에 중전안타를 맞은 어센시오는 주자가 누상에 나간 뒤 슬라이드 스텝으로 공을 던졌다. 그런데 이 자세에서 공을 던지자 제구가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무사 1루에서 두 번째 상대인 9번 허경민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한 것. 직구와 체인지업 등이 전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다.
순식간에 무사 1, 2루의 실점 위기. 타석에 들어선 1번 정수빈은 곧바로 초구에 번트를 댔다. 홈플레이트 앞쪽에 절묘하게 떨어진 타구. 포수 이홍구가 달려나와 잡았지만, 이미 주자들은 안전하게 진루한 뒤였다. 정수빈만 1루에서 아웃. 1사 2, 3루로 위기가 더 짙어졌다.
이어 타석에는 대타로 양의지가 나왔다. 어센시오는 자신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꺼냈다. 실점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그러나 초구가 커트를 당했고, 2구째로 던진 140㎞짜리 체인지업은 여지없이 얻어맞았다. 우중간을 가르는 큼직한 2루타였다. 3루 주자에 이어 2루 주자까지 홈을 밟았다. 다행히 어센시오는 후속 박건우와 오재일을 삼진과 좌익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추가 실점을 하지 않았다.
어센시오가 무너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주무기인 체인지업의 제구력 난조다. 와인드업 자세로 던지거나 주자가 나간 뒤 슬라이드 스텝으로 던질 때 모두 제구가 이전과는 달랐다. 두산의 정교하고 빠른 타자들을 상대할 때 이런 문제가 두드러졌다. 이는 다른 팀 타자들을 상대할 때도 반복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새구장의 마운드가 낯설어서였다. 기아 챔피언스필드에 선 투수들은 "마운드가 약간 낮은 느낌"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는 적응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결국은 제구력의 보완이 숙제다.
이와 관련해 선 감독은 16일 "어센시오가 차라리 지금 시기에 볼넷도 내주고, 얻어맞기도 하면서 실점하는 게 좋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어차피 시범경기는 여러 가지를 테스트하고, 보완할 수 있는 기회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차라리 문제점이 노출되는 편이 낫다. 그래야 선수 스스로도 새롭게 마음을 다지고, 코칭스태프도 이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쉽다.
선 감독은 "그간 어센시오가 계속 실점을 하지 않았는데, 어제 볼넷도 내주고 실점도 하면서 본인이 느끼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한국 타자들에 대한 생각도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이를 통해 더 집중력 있게 공을 던져야 하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어센시오의 활약도가 팀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과연 어센시오는 첫 실점을 보약으로 삼을 수 있을까.
광주=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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