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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는 중·고등학교 시절 최전방 공격수로 전국 대회에서 이름을 떨치며 특급 유망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동창인 하대성(29·베이징 궈안) 백종환(29·상주)과 함께 부평동중-부평고의 전성기를 열었다. 2003년에는 전국대회 3관왕까지 이뤄냈다. 이근호의 성장은 신 감독의 조련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는 "근호는 어렸을때 워낙 피지컬이 좋았다. 스피드가 좋고 저돌적이라 중학교때는 혼자 공격을 다해도 상대가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고등학교에서는 팀플레이가 필요했다. 근호에게 동료들을 이용하는 플레이를 가르쳤더니 습득을 빨리 했다. 이해력이 빠른 선수라 가르치기가 쉬웠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천에 입단한 이근호에게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2군을 전전했다. 2006년 재기를 꿈꾸던 그는 인천의 2군리그 우승을 이끌고 MVP까지 수상하며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천에서 그의 미래는 어두웠다. 구단으로부터 "입대를 하는게 어떻겠냐"라는 권유를 듣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때 이근호는 신 감독을 찾아갔다. 속내를 털어 놓았다. 이근호는 "감독님, ○○이나 ○○으로 이적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신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근호야, 지금 네가 1군에서 경기를 못뛰는게 힘든건데 그 팀으로 가도 경기에 뛸 가능성이 적다. 너를 잘 아는 지도자가 있고, 1군 경기에 뛸 수 있는 팀으로 가라. 그 팀에서 네 모습을 찾는게 먼저다." 신 감독은 변병주 감독이 이끌던 대구FC를 추천해줬다. 제자는 스승의 조언에 따랐다. 이근호는 2007년 대구로 이적했다. 새 길이 열렸다. 축구에 눈을 떴다. 이근호는 대구에서 2시즌 동안 57경기에 출전해 23골-9도움을 올리며 K-리그 대표 공격수로 성장했다. 2009년 시즌 후 J-리그(주빌로 이와타)에 진출했다. 2012년에는 울산으로 복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 및 MVP를 수상하며 아시아 정상 선수로 발돋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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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가 발표되고 신 감독은 수 많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의 제자인 김정우(32·알 샤르자) 조용형(31·알 라이안) 김형일(30·포항)이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에 포함됐다. 그러나 신 감독은 웃을 수 없었다.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맹활약한 이근호가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해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지에서 귀국하던 날이었다. 제자가 마음에 걸렸다. 스승의 충격도 컸다. "근호가 공항에서 바로 일본으로 갔다. 차마 전화를 하지 못하겠더라." 일주일에 2~3번씩 통화를 하던 스승과 제자는 이후 6개월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신 감독은 이근호가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면 전화를 할 것이라 믿었다. 6개월 뒤 이근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감독님, (탈락 당시에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어요. 주위에 있는 모든게 싫어서 한국에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다시 시작했어요. 6개월만에 마음을 다시 잡게 됐습니다." 이근호의 목소리를 들은 신 감독은 가슴속 뜨거운 울림을 간신히 참아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근호에게 힘을 북돋아줬다. "근호야. 처음의 너를 다시 찾아라.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는 것 뿐이다. 다시 일어서는거야." 이근호는 "네, 다시 일어서겠습니다"라며 신 감독과 굳은 약속을 했다.
이근호의 인생 드라마는 이제 새 막을 열 준비를 마쳤다. 브라질월드컵에서 그는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갈까. 뒤에서 묵묵히 응원을 보내는 신 감독은 '해피 엔딩'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하성룡 기자 jackiech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