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그는 충암고 원광대 출신으로 1999년 신인 2차 8라운드 전체 57순위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아마추어 시절 잘 나갔던 A급 유망주는 아니었다. 열심히 하는 선수 그리고 언젠가는 한 번은 잘 할 수도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롯데 구단의 지난 10년 이상을 현장에서 몸소 경험했다. 그속에서 조성환 스스로도 우여곡절이 참 많은 삶을 살았다.
Advertisement
2008년, 처음 주장이 된 조성환은 살아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다. 타율 3할2푼7리, 10홈런, 81타점을 올리면서 생애 최고의 해를 보냈다. 첫 골든글러브(2루수)를 받았다. 로이스터 감독의 신뢰에 제대로 보답하면서 롯데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2011년 6월, FA(자유계약선수) 자격 획득을 얼마 남기지 않고 시야가 선명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미 그는 몇해전 한 차례 라섹수술을 받았었다. 그런데 다시 시력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을 선명하게 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안경을 착용했다. 타격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듯했지만 성적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117경기에 출전했지만 타율이 2할4푼3리. 조성환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경기력과는 달랐다. 그는 스스로 불만족스러웠다. 자꾸 눈에 신경이 갔다.
Advertisement
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견뎌내기는 어려웠다. 주장을 다시 맡은 2013년 시즌 초반, 햄스트링 부상이 찾아왔다. 잠깐 2군으로 내려가서 컨디션을 회복하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대신 조성환의 공백은 정 훈이 메우기 시작했다. 정 훈은 조성환의 빈자리를 기대이상으로 잘 채워주었다. 조성환이 돌아왔지만 정 훈이 계속 먼저 나갔다. 그렇게 2013년이 흘렀다.
조성환은 이번 2014시즌 6경기에서 7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시즌 시작은 1군에서 했지만 주전이 아닌 백업이었다. 2군에 있다가 잠깐 1군으로 올라왔지만 대주자 또는 대타로 팬들을 만났다. 조성환은 스스로 은퇴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조성환은 청춘의 황금기를 롯데에서 다 보냈다. 부산이 제2의 고향이 돼 버렸다. 그는 이제 선수가 아닌 제2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출발이 다시 롯데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