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승12패 하던 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한국프로야구 역대 12번째로 통산 120승을 달성하던 순간, '현역 최다승 투수' 삼성 배영수는 남다른 감상에 젖었다. 4전5기 끝에 완투승으로 120승을 장식했다. 어렵게 거둔 승리, 120승을 앞두고 고전할 때마다 떠오른 건 1승이 절실했던 2009년이었다. 2009년 배영수는 1승12패 평균자책점 7.26을 기록했다.
배영수는 25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넥센과의 홈경기에 선발등판해 9이닝 3실점으로 시즌 4승(3패)째를 거뒀다. 삼성 타선은 장단 20안타 14득점을 폭발시켜, 14대3 대승을 이뤄냈다. 지난달 21일 포항 롯데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35일만에 거둔 승리다. 오랜 시간 아홉수에 머물러 있었다. 5번째 도전에서 승리를 따냈다.
2005년 4월 2일 대구 롯데전(9이닝 무실점 완봉승) 이후 3371일만의 완투승이었다. 마지막 완투 기록은 2012년 9월 26일 대구 KIA전 9이닝 3실점 완투패다. 완투 역시 637일만이다.
앞선 4경기는 불운했다. 지난달 27일 잠실 LG전에서 7이닝 3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절친한 마무리 임창용이 블론세이브를 범하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5일 대구 KIA전에서도 5이닝 4실점으로 승리요건을 갖췄으나, 또다시 임창용이 승리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12일 목동 넥센전에서 4이닝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된 배영수는 지난 18일 인천 SK전에선 5⅔이닝 5실점으로 승리를 눈앞에 뒀다 또 임창용의 블론세이브로 120승 달성을 뒤로 미뤄야만 했다.
지독한 악연이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야구를 앞으로 몇 년을 더 할텐데 그런 걸 신경 쓰면 안된다"며 아쉬워했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배영수가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앞으로 쌓을 승수가 많은데 120승은 크게 의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배영수는 이날 여유롭게 승리를 따냈다. 초반부터 타선의 화끈한 득점지원도 있었지만, 배영수의 역투도 돋보였다. 8회까지 투구수가 111개였으나,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9회 세 타자를 공 9개로 막아내며 완투승을 완성했다.
배영수의 직구 최고구속은 142㎞에 불과했다. 과거 불 같았던 강속구는 없었지만,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기교파로 변신한 배영수는 다양한 변화구를 앞세워 노련미로 상대를 제압해갔다.
입단 이후 삼성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배영수는 지난 2007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에이스로 많은 공을 던지면서 그의 팔꿈치 상태는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였다. 수술시에도 이처럼 상태가 나쁜 선수는 없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수술 이후 배영수는 예전의 스피드를 잃었다. 2008년 9승(8패)을 올렸으나, 무리한 탓으로 이듬해엔 1승(12패)만을 올리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재기를 위해 몸부림 친 배영수는 2012년 12승(8패)으로 7년만에 두자릿수 승리를 따낸 뒤, 지난해에도 14승(4패)로 다승 공동 1위에 올랐다.
배영수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이젠 빠르지 않은 공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줄 아는 베테랑이 돼있었다. 120승을 거둔 뒤에도 "2009년에 1승(12패)했던 때가 생각난다"며 웃었다. 이를 악물고 던졌지만 매번 고개를 숙였던 그때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배영수는 이날 자신의 투구에 대해 "전체적으로 경기가 잘 풀렸다. 포수 (이)흥련이의 사인에 고개를 흔들고 내 고집대로 던졌을 때 안타를 맞았다. 흥련이가 공부를 많이 하고 온 것 같았다. 너무 고맙다. 점수를 많이 내준 타자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그동안 120승 고지를 밟지 못해 답답함도 있었다. 배영수는 "그동안 사실 좀 힘들었다. 하지만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스스로 많이 강해졌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119승이 너무 싫어 별 걸 다 해봤다. (서)건창이한테 많이 맞아서 오늘 투구판을 밟는 위치를 1루 쪽으로 바꿨다. 상대를 해보니 '되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건 배영수의 의지였다. 그는 "코치님께 내가 마무리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9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창용이형도 잘 막고 오라고 하시더라"며 미소지었다.
대구=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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