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영광 뒤에 '글레디에이터' 김형일(29)이 있었다.
2009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3위의 역사를 썼다. 태극마크를 달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 무대를 누비기에 손색이 없었다. 1m87, 83㎏의 다부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터프한 헤딩과 시원시원한 볼처리가 일품이었다. 강철전사의 표본으로 꼽을 만했다.
세상이 달라졌다. 상무에서 2년 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뒤 자리가 사라졌다. 김형일의 빈 자리는 김원일-김광석 듀오가 채웠다. 이들은 포항의 FA컵 2연패와 프로축구 사상 첫 더블(리그-FA컵 동시제패)의 새 역사를 창조하면서 '스틸타카' 최후의 보루로 자리매김 했다. 앞서 영광을 쓴 김형일은 절치부심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김형일은 한물 갔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기회는 불현듯 찾아왔다. 부상과 징계 변수 속에 '스틸타카'가 위기에 몰렸다. 황 감독은 고민 끝에 김광석의 파트너를 김형일로 교체하기로 했다. 풍부한 경험과 터프함에 승부를 걸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김형일은 2달 째 포항 수비라인을 지키고 있다. 최근 포항이 스리백으로 전환한 뒤에도 김준수-김광석과 호흡을 맞추면서 포항의 선두경쟁에 힘을 보태고 있다. 10일 광양축구전용구장서 열린 전남과의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5라운드에서는 무실점에 공헌하면서 빛을 발했다.
"주전으로 뛰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았다." 김형일의 표정은 밝았다. 단순히 지금의 주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대전에서 프로에 데뷔해 포항으로 이적하기까지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얻은 베테랑의 여유였다. 그는 "내 자신을 추스리려고 노력했다. 훈련을 통해 갈고 닦는 수밖에 없었다"며 "다른 선수들이 워낙 잘해주고 있어 나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아직 경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팀에는 좋은 수비수들이 많다"며 "굳이 내가 주전으로 뛰지 않아도 다른 선수들이 언제든 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 했다.
선수는 그라운드를 누빌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철저히 욕심을 숨기는 김형일이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주전'이라는 단어가 아로새겨져 있다. 김형일은 "지금처럼 꾸준히 활약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광양=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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