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주마가편'이라는 사자성어도 있다. 달리는 말이 더 빨리, 그리고 오래 뛰게 하려고 기수는 회초리를 든다.
하지만 이게 늘 정답일수는 없다. 시련이 항상 사람을 강하게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완전히 무너트리기도 한다. 시련의 크기와 빈도가 중요하다.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뼈아픈 상황에서 나오는 시련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큰 트라우마를 남겨 사람을 무너트릴 수 있다. 넥센 히어로즈 마무리 투수 손승락의 충격에 대한 우려는 이런 이유로 생긴다.
손승락은 올해 정규시즌에서 세이브 1위를 기록한 당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다. 62경기에서 32세이브를 달성했다. 반면 넥센의 한국시리즈 파트너인 삼성 라이온즈 마무리투수 임창용은 31세이브로 이 부문 2위를 했는데, 오히려 블론세이브는 9개로 1위였다. 손승락보다 3개가 더 많다. 임창용이 아무리 대단한 투수라고는 해도 세월의 흐름까지 이길 순 없다. 구위가 떨어진 탓이다.
그런데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손승락은 정규시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심리적 데미지를 입었다. 바로 10일 열린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2사후 끝내기 역전타를 얻어맞은 것이다.
이날 손승락의 첫 모습은 막강했다. 8회말 무사만루의 절체절명 위기상황에 등장해 박석민-박해민-이흥련을 모두 가볍게 범타 처리했다. 박석민은 유격수 인필드플라이, 박해민은 1루수 땅볼, 이흥련은 2루수 땅볼. 타구가 모두 내야를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손승락의 구위는 좋았다. 자신감도 넘쳤다.
하지만 9회에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1사 후 나바로의 타구를 유격수 강정호가 실수로 잡지 못한 게 화근. 결국 2사가 돼야 할 상황이 1사 1루로 바뀌자 손승락은 흔들렸다. 박한이는 잡아냈지만, 채태인-최형우 콤비에게 연속 안타를 맞아 역전패를 허용했다. 블론세이브다.
똑같은 블론세이브라고 해도 이건 얘기가 좀 다르다. 정규시즌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경기고, 또 그만큼 팀의 데미지도 크다. 선수가 받을 충격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이 블론세이브는 믿었던 동료 강정호의 실책에서부터 비롯됐다. 손승락의 심리적 충격은 클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우려되는 게 앞으로 손승락이 어떤 모습을 보일까 하는 점이다. 한국시리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넥센이 2승3패로 몰려 있지만, 2연승으로 기적같은 역전우승을 거두지 말란 법이 없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시나리오다.
다만, 이 시나리오가 완성되려면 손승락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뒷문을 든든히 막아줘야만 역전 시나리오가 현실로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5차전의 충격이 이런 역할을 해야하는 손승락에게 큰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건 넥센 코칭스태프의 숙제다. 손승락의 심리적 데미지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제거하느냐에 따라 대역전 시나리오의 완성 여부가 판가름날 전망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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