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최악이에요. 수원에 3명 남겨두고 다 데려왔어요."
경기 전 만난 서정원 수원 감독의 푸념이었다. 현실이었다. 단순히 '부상병동'이라 치부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부상자가 이어졌다. 김은선 부상 이후 서 감독의 만능키로 활약하던 조성진이 주중 대전과의 경기에서 쓰러졌다. 광대뼈 골절. '곽대장' 곽희주도 햄스트링을 다쳤다. 설상가상으로 정대세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데려온 '불가리아 특급' 일리얀은 제주에서 훈련 도중 골반에 무리가 왔다. 베스트11을 짜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서 감독은 "올시즌 내내 부상으로 고생 중이다. 이제 극에 달한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서 감독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달라진 수원의 힘을 믿는 눈치였다. 이는 그대로 그라운드에 구현됐다.
수원은 16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와의 2015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5라운드에서 4대2 역전승을 거뒀다. 전반 먼저 2골을 내줬지만, 이후 4골을 터뜨리며 경기를 뒤집었다. 수원은 전반 22분 송진형, 35분 김 현에게 연속골을 허용했지만 전반 38분 조찬호의 골을 시작으로 후반 10분 조찬호, 후반 14분 이상호, 후반 19분 권창훈이 연속골을 터뜨렸다. 사실 수원에게는 어려운 경기였다. 전날 3위 포항(승점 40)이 '선두' 전북(승점 53)을 잡았다. 이날 패했더라면 2위 자리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수원은 다시 한번 고비를 넘었다. 승점 46점으로 포항과의 승점차를 벌리면서 선두 추격에 나섰다.
달라진 수원의 힘은 '탄탄해진 잇몸'에서 비롯된다. 고비때마다 새로운 해결사가 등장했다. 이날의 히어로는 단연 조찬호였다. 포항에서 뛰던 조찬호는 여름이적시장에서 최재수와 맞임대 됐다. 공격라인 보강을 원하는 서 감독의 의도였다. 전날 전북전에서 결승 프리킥을 터뜨린 최재수의 활약에 응답이라도 하듯 조찬호는 수원 데뷔전에서 2골-2도움을 성공시켰다. 경기 전 "찬호가 해줄 것 같다"고 한 서 감독의 기대에 100% 부응하는 활약이었다. 스트라이커가 없는 상황에서 터진 조찬호의 득점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새 얼굴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동아시안컵을 통해 스타로 떠오른 권창훈은 이날도 득점에 성공했다. 대전전에 이어 2경기 연속골이다. 서 감독은 "창훈이는 그 전에도 잘했지만 동아시안컵 이후 한층 더 성장한 느낌이다"고 했다. 권창훈의 발견 역시 이러한 위기에서 출발했다. 서 감독은 공백이 생길때마다 새 얼굴을 적극 기용했다. 이날도 5명의 23세 이하 선수들이 18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고민성 장현수도 포함됐다. 서 감독은 "권창훈 구자룡 민상기 등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 수원의 핵심 멤버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서 감독은 선수들의 인식 변화를 꼽았다. 그는 "예전에는 우리가 쉽게 무너지거나 주저 앉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이 많이 없어졌다.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도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선수들에게 '지금이 시험무대다. 이럴때 이겨야 진짜 우리의 힘이 나온다. 수원 답게 뛰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부분을 인식하고 준비 단계부터 무장이 잘 돼 있다"고 설명했다.
온갖 위기에도 꾸역꾸역 승점을 쌓는 수원, 진짜 명가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서귀포=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