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체질인가?'
한국 배드민턴이 최근 기묘한 법칙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서 열리는 슈퍼시리즈나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면 펄펄 나는 이른바 '유럽 강세 법칙'이다.
한국은 최근 덴마크와 프랑스에서 열린 슈퍼시리즈에 연달아 참가했다. 슈퍼시리즈 프리미어급인 덴마크대회에서 남자복식(유연성-이용대), 여자복식(정경은-신승찬), 혼합복식(고성현-김하나)을 휩쓸었고, 여자단식 성지현(MG새마을금고)이 동메달을 땄다.
곧바로 열린 프랑스 슈퍼시리즈에서는 유연성(수원시청)-이용대(삼성전기)가 남자 복식, 고성현(김천시청)-김하나(삼성전기)는 혼합복식에서 정상에 올랐다. 남자복식 김사랑-김기정(이상 삼성전기)과 여자복식 정경은(KGC인삼공사)-신승찬(삼성전기)이 각각 3위를 차지했다.
지난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2015 세계개인선수권에서 같은 선수단이 출전하고도 남자복식(유연성-이용대), 여자단식(성지현)에서 동메달 2개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판이한 결과다.
인도네시아 세계개인선수권에서 다소 부진했던 게 선수들에게 자극이 됐기 때문에 향상된 부분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 배드민턴은 이번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유독 유럽에서 강했다.
지난해 덴마크에서 열린 세계개인선수권때 사상 처음으로 남자복식 금·은·동메달을 싹쓸이하고, 여자복식(이소희-신승찬) 동메달을 차지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가 하면 세계개인선수권에서 역대 최고 성적이었던 1991년(남복, 혼복 금메달)과 1999년대회(남복, 혼복 금메달) 모두 공교롭게도 덴마크에서 열렸다.
해마다 배드민턴 국제오픈대회는 세계 각국에서 열리지만 유럽과 아시아권 대회가 등급이 높기 때문에 한국은 주로 이 지역에 출전한다. 그런데 아시아보다 유럽권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성적을 내는 것이다. 비결은 시차적응에 있었다. 1992년부터 2010년까지 코치와 감독으로 대표팀에 몸담았던 김중수 대한배드민턴협회 전무는 "내가 대표팀을 이끌 때부터 유럽쪽으로 가면 성적이 좋아지는 현상이 있었다"면서 "한국 선수들이 시차적응을 잘 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럽은 한국과 8∼9시간의 시차가 나기 때문에 아시아권 선수들은 시차적응이 가장 큰 변수다. 한국의 에이스급 선수들은 매년 유럽 대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시차적응 노하우가 생겼다는 게 김 전무의 설명이다. 특히 유럽대회를 앞두고는 수면시간을 조절하는 등 국내에서 충분한 리허설을 거치는 프로그램도 활용한다.
여기에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흔히 중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권에서는 폭발적인 배드민턴 열기로 인해 경기장 분위기에서 위축감이 든다. 반면 유럽권 관중은 극성스럽지 않고 차분하게 경기를 즐기는 편이다. 요즘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아시아권에 출전하면 판정 등 홈 텃세로 불리한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여전히 팽배한 것도 선수들 심리에 영향을 준다. 신사적인 스포츠 매너 의식이 강한 유럽에서는 이른바 '장난'을 잘 치지 않는다는 안도감도 무시할 수 없다고 김 전무는 덧붙였다.
결국 한국 배드민턴의 유럽 강세는 우연이 아니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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