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다가오는데…, 우려했던 결과다."
세계배드민턴선수권에서 한국의 성적표를 받아든 관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안재창 감독이 이끄는 한국 배드민턴대표팀은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2019년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 대회서 2년 연속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복식 3개조(남·여·혼합복식)가 8강에서 모두 탈락했고, 여자단식은 16강, 남자단식은 32강에서 조기에 떨어졌다.
지난해 중국 난징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노메달이다. 2017년 남자단식 손완호(인천국제공항)의 동메달이 마지막이었다. 2014년 남자복식 고성현-신백철(이상 김천시청)의 금메달이 이 대회 한국의 마지막 금메달이다.
당초 한국대표팀은 이번 대회 1~2개의 메달을 기대했다. 최근 상승세를 보인 여자복식 김소영(27·인천국제공항)-공희용(23·전북은행)과 혼합복식 서승재(22·원광대)-채유정(24·삼성전기) 등이 일을 내 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들은 중국의 벽에 막혀 16강과 8강에서 탈락했다. 8강에 올랐던 국내 여자복식 에이스 이소희(25)-신승찬(25·이상 인천국제공항)마저 일본을 넘지 못했다.
이번 대회는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2020년 도쿄올림픽의 전초전이나 다름없었다. 세계랭킹에 따라 출전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어차피 만날 올림픽 메달 경쟁자들이 대거 출전했기 때문이다.
세계선수권은 최상 등급 대회여서 올림픽 랭킹 포인트도 높게 배정돼 있다. 그만큼 한국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
반면 영원한 라이벌 일본은 이번에 또 웃었다. 지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사상 첫 금메달(여자복식)을 일구며 세계 최강 반열에 올라선 일본은 더이상 한국을 경쟁 상대로 보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5개 종목 가운데 혼합복식만 제외하고 4개 종목을 결승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여자복식에서는 자국 선수끼리 결승전을 치렀다.
현재 대한배드민턴협회가 도쿄올림픽에서 메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꼽는 종목이 여자복식이다. 일본의 이런 기세가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종전 세계 1인자 중국은 준결승에서 일본에 줄줄이 막히면서 혼합복식 1개조의 결승행에 그쳤다. 과거 이런 대회에서 중국과 한국이 경쟁하듯 했던 '무더기 결승 진출'을 일본이 독점한 것이다.
사정이 이쯤되면 내년 안방 올림픽 '메리트'까지 누리게 된 일본 배드민턴은 축제 분위기나 다름없다. 일본과 한국의 희비는 "예견됐던 일"이라는 게 배드민턴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일단 객관적인 기량에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뒤처지고 있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주니어대표팀에서는 한국이 우세지만 성인대표팀에선 그 반대다.
여기에 일본은 한국 레전드 출신 박주봉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을 바탕으로 한 대표팀을 중심으로 협회 등 주변이 똘똘 뭉치는 모습이다. 일본은 요즘 대표팀 유니폼에 협찬하겠다는 스폰서가 줄을 잇지만 브랜드 로고를 더 붙일 공간이 없어 즐거운 비명이다.
이에 반해 한국 배드민턴은 작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후유증이 여전하다. 대표팀 감독-코치가 교체됐지만 협회 안팎의 파벌, 반목 등으로 전혀 단합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표팀을 지원하고 관리한다는 취지로 경기력향상위원회가 구성돼 있지만 대표팀과 '따로국밥'으로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각종 불협화음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협회 수뇌부로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
한편 안재창 감독은 이번 대회에 대해 "지난해 아시안게임 노메달 이후 선수와 코치들 모두 조급했던 게 사실이다. 큰 경기일수록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이번 대회를 통해 깨달았을 것"이라면서 "현재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랭킹 포인트를 쌓기 위해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강훈련을 함께 하고 있다. 부상을 조심하면서 이제는 체력보다 기술과 전술적인 부분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회를 관전한 박기현 대한배드민턴협회 회장은 "여자복식 등 기대했던 종목에서 메달이 나오지 않아 아쉽다. 남자복식과 김가은이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라며 "향후 대표팀이 올림픽에 매진하도록 필요한 부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