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대체 왜 선수협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답답해요."
올해 KBO나 구단, 야구계 관계자들을 만나서 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이야기가 나오면, 공통적인 반응이었다. 말 그대로 선수협은 지난 1년간 그 어떤 이슈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변호사였던 기존 사무총장이 물러난 후 신임 사무총장을 임명했고, 국내 대기업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업무를 시작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선수협은 KBO와의 소통 능력이 퇴보했고, 그 어떤 이슈에도 의견을 내지 않는 단체로 '그림자'처럼 1년을 보냈다.
모두가 답답해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비상 상황이었다. KBO와 구단들은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한 스프링캠프 기간부터, 정규 시즌 개막 연기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정신 없는 시기를 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한달 가량 늦게 개막에는 성공했지만, 이후로도 돌발 변수들이 많았다. 그러나 선수협은 개막 지연이나 일정, 위기 상황에 대해 그저 조용히 입을 닫고 있었다.
물론 선수협이 리그 운영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가지고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면서 특정 이슈에 대한 입장을 만들어가야 근본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만약 어떤 일과 관련해 구단들이 선수들을 배려하지 않고 독단적 결정을 한다면, 여기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선수협이 가지고 있지만 지난 1년간 그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특히 선수협 존재의 가장 궁극적 이유인 저연차, 저연봉 선수에 대한 보호가 실제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따랐다.
특히나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 경기가 계속 되고, 구단과 리그 전체가 심각한 위기를 맞았지만 선수협은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다. 2월말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성금 3000만원을 기부하기도 했지만, 그 후로 숱한 이슈에서는 묵언했다. 정규 시즌 개막 이후 선수협이 언론에 보낸 보도자료는 단 2개. 법률자문 협약 체결과, 한 기업체와의 협약 체결 소식 뿐이었다.
KBO와의 밀접한 소통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내막을 잘 알고있던 한 야구계 관계자는 "선수협이 불통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야 할 선수들의 이야기가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리그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도 구단들은 비상 경영 중이다. 메이저리그처럼 경기수에 비례해 선수 연봉을 삭감할 근거도 없다. 올 시즌이 이대로 끝나면 가장 먼저 누가 타격을 입겠나. 바로 저연차, 저연봉 선수들이다. 그런데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있다. KBO에서 '고액 연봉 선수들이 리그 재정난을 인지하고, 아주 조금이라도 연봉을 자진 삭감하며 저연봉 선수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써달라고 액션이라도 취하는 게 어떻겠나'라고 의견을 내자 선수협은 아무런 응답이 없고, 그 뒤로 연락을 받지도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KBO가 여러 이슈에 대해 논의를 하고싶어했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만남이 성사되지도 않았다. 대체 뭐하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었다.
선수협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선수들의 초상권과 관련해서도 사무총장은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있지 않았다. 관련 문의를 진행했을 당시, 사무총장은 "선수들은 운동에만 집중해야 한다. 논의는 선수협을 통해서 하시라"면서도 정확한 내용은 모르는 상태였다. 실무는 결국 사무국 내 직원들이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최근 판공비 논란이 터졌고, 전임 회장과 사무총장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NC 다이노스 양의지가 새로운 선수협 회장으로 뽑혔다. 그런 와중에 선수협은 지난 9일 의미있는 행보를 보였다. 2차 드래프트 폐지와 관련해 반대 의견과 대안책 제시를 촉구한 것이다.
실제로 선수협의 이야기가 다음주 이사회에서 어느정도 반영될 수 있을지, 폐지를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지만 지난 1년간 조용히 숨 죽이고만 있던 선수협이 달라진 자세를 보여줬다는 자체로도 반가운 변화다.
일부에서는 '결국 선수협은 선수들이 운영하는 거고, 선수들끼리의 업무를 처리하는 건데 왜 외부에서 왈가왈부 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최근의 행보는 아쉬웠다. 전반적인 야구계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과거 투쟁하며 선수협을 세웠던 야구계 선배들도 지금의 행보를 안타까워했다.
훈련만 메이저리그식을 선호할 게 아니라,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의 운영 과정이나 집행부 구성, 마케팅 활용 방법들을 심도있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신임 양의지 회장이 중책을 맡았지만, 산적한 과제는 많다. 야구계에서는 '현역 선수가 안그래도 바쁜데 선수협 회장까지 하는 것은 무리다. 근래에 은퇴한 선수 혹은 외부 인사가 맡는 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지 않겠나'라는 의견도 나오고, 은퇴선수협회와 현역 선수협회가 분리되어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번에는 정말 선수협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