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FA 정수빈은 한화 이글스에 꼭 필요한 선수였다. 영입은 실패했지만, 한화는 최선을 다했다.
정수빈이 한화의 뜨거운 러브콜을 마다하고 두산 베어스에 남았다. 6년 최대 56억원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은 투자와 잔류를 원했던 선수의 마음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선수의 가치를 어떻게 구체적인 액수로 환산할 것인가. 10개 구단 모두가 공유하는 고민이다. FA와 연봉 계약이 기다리는 매년 겨울이면 더욱 그렇다.
예상과 달리 2020년 스토브리그는 활활 타오르고 있다. 허경민이 4+3년 85억원이란 초대형 계약으로 두산에 잔류했다. 반면 최주환(4년 42억원)은 SK 와이번스로, 오재일(4년 50억원)은 삼성 라이온즈로 떠났다. 그리고 정수빈은 한화의 4년 40억원 러브콜을 마다하고 친구 허경민과 함께 두산에 남기로 했다.
한화 이글스는 장기적 리빌딩을 천명한 팀이다. 구단 운영의 초점이 젊은 선수들에게 맞춰져있다. 올시즌 신예 선수들을 적극 기용했고, 시즌이 끝난 뒤엔 30대 중반을 넘긴 베테랑들에게 안녕을 고했다. 1. 2군 사령탑은 육성 전문가인 카를로스 수베로, 최원호 감독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한화 역시 다른 9개 구단과 마찬가지로 프로 구단이다. 성적을 포기할 수 없다. 잠실의 드넓은 외야를 누벼온 정수빈은 한화에 꼭 필요한 선수였다. 금액이 말해주듯, 한화의 러브콜도 간절했다. 단지 정수빈의 마음이 두산에 쏠렸을 뿐이다.
당초 정수빈의 예상 몸값은 30억원 미만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허경민 최주환 오재일 등 같은 팀 출신 FA가 한꺼번에 쏟아졌고, 이들에겐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빛나는 '두산 프리미엄'이 붙었다. 두산 핵심 코칭스태프를 거쳐 타 팀으로 옮긴 한용덕 전 감독과 이강철 KT 위즈 감독, 김원형 SK 신임 감독 등 '두산 출신 코치'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와중에도 기대 이상의 계약을 이끌어낸 이들 또한 '두산 출신'에 부여된 가치를 보여준다.
정수빈 측은 FA 협상을 서두르지 않고 동료들의 과정을 지켜봤다. 이들 모두가 두산에 잔류했다면, 정수빈까지 잡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정수빈은 원소속팀 외에도 한화가 그를 원하는 상황. 자연스럽게 이적할 수 있다. 만약 일부 선수가 이적할 경우 그 보상금 덕분에 두산에게 여유가 생긴다. '잔류 1순위'였던 정수빈은 그 틈을 파고들었고, 기대 이상의 계약을 이끌어냈다.
눈에 띄는 점은 두산이 정수빈에게 4+2년, 허경민에게 4+3년의 옵션 계약을 제시했다는 것. 두 선수는 두산의 원클럽맨들이다. 많은 성과를 거뒀고, 함께 해온 추억들이 가득하다. 두산 또한 이들의 컨디션 관리에 자신감이 있다. 자팀 FA의 잔류인 만큼, 액수 논란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반면 외부 FA를 영입하는 팀 입장에서, 30대에 접어든 선수들에게 4년을 초과하는 기간을 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버페이'라는 외부의 시선을 신경쓸 수밖에 없다. 김응용 전 감독의 후광을 업고 정근우(4년 70억원), 이용규(4년 67억원)를 불꽃처럼 영입했던 2013년과는 상황이 달랐다. 두 선수 외에 송은범 배영수 심수창 등 '실패'로 남은 FA 영입 사례도 부담이다.
흔히 스포츠는 결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구단 운영은 다른 문제다. 오너의 한방이나 '신의 한수'에 목매던 과거와는 다르다. 선택을 위한 원칙과 그 과정에서의 합리적인 근거가 필요하다. 성공만큼이나 실패의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한 뒤에 결정이 이뤄진다.
정수빈 측은 15일 오후 한화 측에 '계약 불가' 입장을 전달했다. 이날 저녁 한화의 박찬혁 대표이사는 자신의 SNS에 '합리적 선택'에 관한 짧은 글을 올렸다. 결과에 따른 도취와 비평을 경계하고, 원칙을 지키되 승부사적 기질을 속으로 숨긴채 때를 기다릴줄 알아야한다는 것. 이를 통해 식견과 실천이 쌓이고, 이를 공유함으로써 조직이 성장하고 단단해진다는 내용이다. 사실상 팀 전력을 제로부터 쌓아올려야하는 한화의 고민이 엿보인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