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두산 베어스가 지난 10일 내부 FA 허경민과 7년 계약을 한데 이어 16일 또 다른 내부 FA 정수빈을 6년 계약으로 붙잡으면서 '초장기' 계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지난해까지 6년 이상의 장기계약 사례는 두 차례 있었다. FA제도 시행 초창기인 2003년말 롯데 자이언츠가 당시 두산 출신 외야수 정수근과 6년 40억6000만원에 계약했고, 2018년 12월엔 SK 와이번스가 최 정과 6년 106억원에 재계약했다. 이들 4명은 구단이 실행 권리를 갖는 옵션없이 해당 계약기간을 모두 보장받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5년 이상, 즉 초장기 계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KBO리그에서는 'A급' FA라고 해도 보통 계약기간 4년을 제시한다. FA 재자격 취득 요건이 4년인데다 5년 이상은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계약기간이 길수록 리스크는 크기 마련인데 두산은 왜 허경민과 정수빈에게 6~7년 기간을 보장했을까. 결국 경쟁이 부른 '인플레이션'이라고 봐야 한다.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벌이는 상대 구단을 떼어놓는 방법으로 파격적인 계약기간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정수근이 롯데를 선택했을 때, 그때까지 없었던 계약기간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수근은 계약 당시 26세에 불과해 여러 구단이 탐을 냈다. 이번에 두산에 잔류한 허경민과 정수빈도 마찬가지다. 두 선수는 나란히 1990년생으로 내년이면 만 31세가 된다. 적지 않은 나이다. 6년, 7년 동안 부상 없이 꾸준히 활약할 것이란 보장이 없는 선수들이다. 경쟁 구단이 내민 러브콜 수준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두산 구단도 베팅을 더 얹을 수밖에 없었다.
FA들은 보통 같은 조건이면 원소속팀 잔류를 선호한다. 또한 대부분 금액보다 계약기간을 더 중요하게 취급한다. 6~7년 동안 방출 또는 은퇴 걱정없이 선수 생활을 한다는 건 큰 메리트다.
영입 경쟁 때문이 아니라 '예우'의 의미로 초장기 계약을 제시하는 경우도 물론 있었다. 2년 전 SK가 최 정에게 6년을 약속한 것은 안정된 신분을 장기간 보장함으로써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예우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3년 56홈런을 때린 뒤 해외진출을 선언한 이승엽을 붙잡기 위해 당시 삼성 라이온즈가 계약기간 6년을 제시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건강과 기량에 관한 확신이 없다면 초장기 계약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초특급 선수가 아니라면 5년 이상 계약을 받기가 쉽지 않다. 부상으로 언제 드러누을 지 모르는 선수를 장기간 거액을 줘가며 보유하는 건 팀 전략과 재정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다. 최근 장기계약 '무용론'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실제 ESPN 조사에 따르면 5년 이상 장기계약을 한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구단 만족도는 50%를 넘지 않았다.
하지만 2~3팀이 벌이는 영입 경쟁에서 이기려면 금액 이외에 계약 기간도 카드로 쓸 수밖에 없다. 1년 전 메이저리그 FA 최대어였던 투수 게릿 콜은 LA에인절스로부터 8년 3억달러를 제시받았지만, 9년 3억2400만달러를 내민 뉴욕 양키스의 손을 잡았다. 평균 연봉으로는 에인절스의 조건이 더 좋았다. 지난해 2월 브라이스 하퍼도 10년 3억달러를 오퍼한 원소속팀 워싱턴 내셔널스를 외면하고 13년 3억3000만달러를 제안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향했다.
금액은 양보하더라도 계약기간을 늘리고 싶은 게 선수 마음이다. KBO리그에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카드가 금액에서 계약기간으로 옮겨가는 분위기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계약기간 중 부상 등의 이유로 선수가 뛰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 보험을 들어놓는다. KBO리그에는 아직 그런 보험 제도가 없다. 계약의 규모가 어떻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구단이 온전히 져야 한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