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FA 시장은 타자들의 천국이다. 한미일 프로야구의 공통된 현상이다. 매년 오프시즌서 주목받는 FA들 대부분은 타자들이다. 계약 금액도 투수들을 압도한다.
이번 오프시즌 들어 FA를 선언한 선수는 투수 6명, 타자 10명이다. 이 가운데 지난 16일까지 계약을 완료한 7명은 모두 타자들이다. 허경민 정수빈(이상 두산 베어스) 김용의(LG 트윈스) 김성현(SK 와이번스) 최형우(KIA 타이거즈)가 원소속팀에 잔류했고, 최주환과 오재일이 각각 SK, 삼성 라이온즈로 둥지를 옮겼다.
FA 투수 계약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6명 중 차우찬 양현종 우규민은 재자격 선수들이고, 나머지 셋은 생애 첫 FA가 된 케이스다.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양현종의 상황이 다를 뿐, 대부분은 타 구단이 탐을 낼 만한 매력 포인트가 별로 없다. 최근 기량과 나이, 부상 경력 등이 이들의 협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을'의 위치에서 원소속팀을 마주하고 있다.
역대로 왜 투수들은 FA 시장에서 주류를 형성하지 못하는 걸까.
1999년 말 FA 제도가 시행된 이후 지난해까지 연인원(延人員) 기준 총 250명이 자유계약시장에 나가 243명이 당해 시즌 계약을 했다. 투수가 79명, 타자가 164명이다. 타자가 두 배 이상 많았다.
매년 등록 선수 현황을 보면 투수와 타자의 비중은 비슷하다. KBO리그 무대를 뛴 역대 등록 선수의 절반이 투수라는 얘기다. 올해도 10개팀 전체 등록 선수 588명 중 투수와 타자가 똑같이 294명이었다. 하지만 FA 투수 비중은 243명 중 32.5%에 그쳤다. 입단 때 50%를 차지하던 투수 비율이 FA 시장에서는 3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타자는 포지션별로 포수 21명(8.6%), 내야수 80명(33.0%), 외야수 63명(25.9%)이었다.
계약 금액에서는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 구단 발표 기준으로 역대 FA 243명의 총 계약 액수는 5919억9800만원. 포지션별로는 투수 1715억8300만원, 포수 582억400만원, 내야수 2013억8100만원, 외야수 1608억3000만원이다. 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29.0%에 불과하다.
총액 순위에서도 상위 5명에 투수는 없다. 이대호(150억원) 양의지(125억원) 김현수(115억원) 최 정(106억원) 최형우(100억원) 등 5명 모두 타자들이다. 투수 최고액은 2016년 12월 LG와 계약한 차우찬의 95억원. 계약기간에서도 6년 이상을 보장받은 정수근 최 정 허경민 정수빈 모두 타자들이다. 게다가 두 차례 이상 FA 계약에 성공한 타자도 이번에 최형우를 비롯해 박용택 김태균 최 정 등 적지 않다.
이처럼 FA 시장에서 투수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타자에 비해 수명과 전성기가 짧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투수가 FA 자격을 얻기까지 8~9시즌을 온전히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며 입을 모은다.
이순철 SBS해설위원은 "간단히 보면 야수는 길게 쓸 수 있지만, 투수는 부상 때문에 좋은 대우를 못 받는다. 구단들이 야수들은 나이가 들어도 전성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까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이고, 투수는 수명 측면에서 하향세에다가 부상 위험이 높으니까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용찬의 경우 2017년 15승3패, 평균자책점 3.63, 2019년 7승10패, 평균자책점 4.07로 풀타임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주가를 높였지만, 지난 6월 팔꿈치 수술을 받고 시즌을 마감해 FA를 앞두고 치명타를 입었다. 이 위원은 "이용찬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지만, 만일 올해 수술이 없었으면 큰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유로 FA 시장과는 별개로 움직이는 외국인 투수들이 선발 마운드서 득세하면서 토종 투수들의 입지가 좁아진 탓도 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