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파워풀(super-powerful)' 코리아 남자 사브르, 대한민국의 국가가 카이로에서 2번 연속 연주됩니다."
22일(한국시각) 이집트 카이로에서 펼쳐진 2022년 국제펜싱연맹(FIE) 세계선수권, 대한민국 여자에페 대표팀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애국가를 울린 직후 '어펜져스' 남자사브르 대표팀이 시상대 꼭대기에 다시 섰다. FIE 온라인 중계 해설자가 '한국 남자 사브르의 4연패'와 더불어 남녀 단체전을 휩쓴 '펜싱코리아'의 쾌거에 놀라움과 함께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이날 강영미(광주서구청·세계 20위), 최인정(계룡시청·세계 1위), 송세라(부산광역시청·세계 2위), 이혜인(강원도청·세계 43위)으로 구성된 여자에페 대표팀(세계 1위)은 단체전 결승에서 '강호' 이탈리아(세계 2위)를 45대 37로 돌려세우며 여자에페 사상 첫 세계선수권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 19일 개인전에서 '레전드' 현 희(진주제일중 코치) 이후 20년만에 우승한 송세라는 한국 여자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2관왕에 올랐다. 9바우트 '최종병기' 송세라가 금메달을 확정 지으며 양팔을 번쩍 치켜들고 뛰어오르는 순간, 강영미, 최인정, 이혜인 등 동료들이 피스트를 향해 질주했다. 간절했던 금메달, '에페 금둥이'들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장태석 에페대표팀 코치와 함께 둥근 원을 그린 채 껑충껑충 뛰어오르는 세리머니로 우승을 자축했다. "금메달만 따자"며 서로를 '금둥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온 '세계 1위' 여자에페 대표팀이 2012년 런던올림픽, 지난해 도쿄올림픽 은메달의 아쉬움을 떨치고 사상 첫 세계 챔피언에 우뚝 섰다.
여자에페 우승의 기운을 '세계 1위' 남자사브르 대표팀이 곧바로 이어받았다. 김정환(세계 5위), 구본길(세계 9위·이상 국민진흥공단), 오상욱(대전시청·세계 3위), 김준호(세계 11위·화성시청)로 이뤄진 남자 사브르 대표팀(세계 1위)은 단체전 결승에서 '난적' 헝가리(세계 2위)를 상대로 45대37,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개인전 우승자' '올림픽 3연패' 헝가리 에이스 애런 실라지(세계 2위)의 막판 맹렬한 추격을 뿌리치고 '막내온탑' 오상욱이 우승을 결정지었다. 2017년 독일 라이프치히, 2018년 중국 우시, 201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회에 이은 4연패를 달성한 '어펜져스(어벤져스+펜싱)'는 손가락 4개를 펴보이는 세리머니로 새 역사를 자축했다. 2010년 한국 최초의 남자 사브르 개인전 세계챔피언이자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첫 그랜드슬래머(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금)인 원우영 코치와 '런던-도쿄올림픽 2연패'를 이룬 그랜드슬래머 후배들이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
남자 사브르는 지난 100년간 헝가리, 러시아가 양분해온 유럽의 전유물이다. 헝가리가 1930~1937년, 1951~1958년, 구 소련이 1983~1990년 단체전 '최다' 6연패를 기록했고, 2000년대 들어선 러시아가 2001~2005년 4연패, 2010~2013년 3연패를 기록한 종목이다. "100년이 지나도 아시아권에서 남자사브르 금메달은 힘들 것"이라던 예언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이 '난공불락'의 종목에서, '아시아 1강' 대한민국이 올림픽 2연패와 함께 세계선수권 4연패를 달성한 건 실로 위대한 역사다.
함께일 때 더 강한 남자 사브르는 위기 속에 더 강해졌다. 러시아가 빠진 이번 대회, 유럽세의 견제는 여전했다. 개인전 8강, 오상욱이 아쉬운 판정 끝에 다 잡은 메달을 놓친 후 선수들은 심기일전했다. '레전드' 원 코치는 "선수들이 개인전 끝나고 마음고생이 많았는데 단체전에서 잘 이겨내줘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는 벅찬 소감을 전했다. "선수로서 첫 세계챔피언에 올랐을 때보다 후배 선수들과 함께 코치로서 세계챔피언이 된 것이 더 기쁘고 뿌듯하다. 함께 이뤄낸 세계챔피언이라 더 기쁘다"고 했다.
'어펜져스 맏형' 김정환 역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세계선수권 무대에서 하루에 애국가를 2번 울린 건 아마 최초일 것"이라고 했다. "이집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날씨가 너무 무덥고 쉽게 지쳐서 4연패를 과연 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는데 동생들이 경기를 너무 잘 뛰어줘서 4연패가 가능했다. 동료들과 원우영 코치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며 선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아시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구본길은 "그 어려운 일을 우리가 또 해냈다"며 활짝 웃었다. '4연패 비결'에 대해 "다시 한번 느끼지만 우리는 팀워크가 너무 좋다. 내가 경기를 못풀어도 동료들이 잘해준다. 뒤에서 격려와 힘을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설령 역전을 당해도 다시 재역전해,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돌아봤다. 코치도 선수도 모두 '그랜드슬래머', '잘하는 애 옆에 잘하는 애'로 이뤄진 이 위대한 팀의 가장 큰 강점은 신뢰와 소통의 팀워크다. "우리 팀엔 선후배가 없다. 서로 허심탄회하게 많은 이야기를 한다. 경기 때도 후배가 선배한테 '오더'를 하고 선배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후배는 선배를 믿는다. 그런 절대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에 강한 팀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며 특별한 자부심을 전했다.
한편 대한민국은 '여자에패 개인전' 송세라의 첫 금메달에 이어 이날 남자사브르, 여자에페 단체전 금메달을 싹쓸이하며 '역대 최다' 금메달 3개를 획득했다. 내년 항저우아시안게임,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펜싱코리아'의 흔들림 없는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