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진 이정후 시리즈도 아니고, 김광현 추신수 시리즈도 아니다. 매 경기,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얼굴들이 맹활약을 펼친다. 감독의 용병술에 따라 100% 임무를 수행해, 감독을 명장으로 만들었다. '미친 선수'가 시리즈를 쥐락펴락하는 가을야구. 큰 무대에 강한 강심장들이 존재감을 남김없이 발휘한다. 매 경기가 총력전인 한국시리즈, 매 타석 매 이닝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3이닝 50개까지 봤는데 이승호가 4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잘 해줬다. 다른 선수들의 투지를 일깨웠다."
5일 SSG 랜더스와 한국시리즈 4차전이 끝난 뒤, 홍원기 키움 히어로즈 감독은 선발 이승호를 칭찬했다. 1승 후 2연패로 몰린 상황이었다. 이승호가 4회까지 48개 공을 던져, 1안타 1실점으로 잘 막았다.
에이스 안우진이 1차전에 이어 선발 등판할 차례인데, 손가락 물집이 터져 출전이 불가능했다. 홍 감독은 좌완 이승호에게 중책을 맞겼다. 2019년 한국시리즈에 2경기 등판했던 이승호는 6대3 승리로 이어진 호투를 했다. 이승호는 올해 페넌트레이스 53경기에 등판했는데, 모두 구원투수로 던졌다. 한국시리즈에선 다른 임무가 떨어졌다.
"걱정했는데 오원석이 너무 잘 던져줬다. 경기 전에 부담될까봐 아무 말도 안 했다.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는데, 오늘은 스스로 3차전을 잡았다."
김원형 SSG 감독은 3차전 종료 후 인터뷰에서 오원석을 수차례 입에 올렸다. 1차전에 구원투수로 나선 숀 모리만도가 1⅔이닝을 던졌다. 3차전에 선발로 투입하자니 체력이 걱정됐다. 대체선발로 오원석을 내세웠는데, 5⅔이닝을 1실점으로 막았다. 0-1에서 마운드를 넘겼지만 8대2 역전승의 발판이 된 호투였다.
올 시즌 히어로즈전 3패, 평균자책점 8.14. 오원석은 페넌트레이스와 가을야구는 다르다는 걸 보여줬다.
공교롭게 대체 선발투수가 기대 이상의 좋은 투구로 3~4차전 승리의 주역으로 빛났다. 감독의 선택이 옳다는 걸 보여줬다.
히어로즈 전병우는 5일 열린 4차전에 2번-1루수로 나섰다. 이번 한국시리즈 첫 선발 출전이었다. 1회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전병우는 3회말 선두타자로 나서 2루타를 터트렸다. 다음 타자 이정후의 적시타 때 결승 득점을 했다. 타선이 연쇄폭발했다. 6안타를 집중시켜 5점을 뽑았다. 전병우의 2루타가 6대3 완승의 기폭제가 됐다.
정규시즌에 SSG 선발투수 숀 모리만도를 상대로 2타수 무안타. 그런데 한국시리즈에선 2타수 2안타를 쳤다. '2번 전병우 카드'가 히어로즈에 힘을 불어넣었다. 홍 감독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내야 백업인 전병우는 1차전 승리의 주역이다. 4-5로 뒤진 9회초, 대타로 나서 2점 홈런을 터트렸다. 연장 10회초 결승타를 때렸다. 히어로즈의 2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40세 외야수 김강민은 3차전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쐐기타를 때렸다. 2-1로 앞선 9회초 1사 만루에서 대타로 출전해 중전 적시타를 쳤다. 이 안타가 SSG 타선의 집중력을 깨웠다. 타자일순해 5점을 추가했다.
김강민은 1차전 9회말 대타로 출전해 1점 홈런을 터트렸다. 5-6에서 6-6을 만든 동점 홈런이었다. 팀은 연장 10회 승부끝에 1점차로 패했으나, 베테랑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시리즈 전적 2승2패. 매 경기 불꽃 승부가 펼쳐졌다. 1위로 직행한 SSG도, 3위로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한 히어로즈도 만만찮은 전력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