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숨 넘어갑니다! 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배구는 1구1구에 숨죽이는 스포츠다. 관중들은 '하나둘셋' 구호를 외치고, 강력한 스파이크가 수비진을 엄습한다. 반대로 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블로킹에 제대로 맞기만 하면 땅에 내리꽂히기 마련이다.
2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펼쳐진 '메가 랠리'는 달랐다. 이날 도드람 2022~2023시즌 V리그 여자부 2라운드 경기를 펼친 팀은 도로공사와 GS칼텍스.
도로공사가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섰지만, 3세트 점수는 10-11로 지고 있던 상황. 양 팀은 블로킹 포함 무려 32차례나 공수를 주고받는 역대급 랠리를 펼쳤다.
받고 올리고 때리는 2~3명의 선수 외에 나머지 선수들도 쉴새없이 움직인다. 속임 동작을 넣고, 블로킹에 맞은 공이 떨어질 위치에 대기한다. 훈련한 대로 약속된 플레이다.
그런데 이날 랠리는 무려 2분 가까이 이어졌다. 선수들은 무아지경으로 움직였다. 수퍼 디그도 몇 차례나 주고 받았다. "숨넘어갑니다"라는 캐스터의 절규처럼, 코트 밖에서 지켜보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조차 숨죽이고 공의 향방을 지켜봤다.
이윽고 강소휘의 마지막 공격이 전새얀의 블로킹에 막혀 코트에 떨어졌을 때, 객석은 명장면을 연출한 선수들을 향한 환호로 끓어올랐다. 강소휘는 허리에 손을 얹은채 숨을 몰아쉬며 분루를 삼켰고, 블로킹을 성공시킨 정대영과 전새얀은 그대로 코트에 드러누웠다.
양 팀 사령탑 역시 붉게 달아오른 얼굴 속 묘한 미소를 보였다.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작전타임을 불렀지만, 넘어간 흐름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이날 경기는 도로공사의 완승으로 끝났다.
경기 후 한국배구연맹(KOVO)에 혹시 V리그 역대 최다 랠리인지 문의했다. 아쉽게도 '랠리 횟수에 대한 공식 통계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날 인터뷰에 임한 선수는 정대영이다. 한국 배구가 '슈퍼리그'로 불리던 1999년 현대건설(당시 그린폭스)에서 데뷔했다. 올해로 23번째 시즌을 뛰고 있는 최고참 선수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둔 엄마 선수이기도 하다.
정대영은 "그 랠리를 이겨서 오늘 경기를 가져온 것 같다. 랠리가 끝났을 때 목에서 '피맛'이 났다"며 한숨을 쉰 뒤 "내 선수 인생에 몇차례 긴 랠리가 있었는데, 이렇게 긴 랠리는 처음"이라고 단언했다. 고비마다 블로킹 6개로 팀 승리를 이끈 그에게 김종민 감독은 "노장은 살아있다!"며 감탄했다.
이날 경기감독관은 유애자 KOVO 경기운영위원이었다. '대통령배(1984년 출범)' 이전 실업리그 시절인 1982년 한일합섬 배구단에서 데뷔, 10년간 선수로 활약했다. 리그 최고 미녀스타였던 그는 은퇴 후에도 리포터와 해설, 경기운영위원으로 수많은 경기를 지켜봤다. 한국 여자배구의 산 증인 중 한 명이다.
유 위원은 "숨도 못쉬고 봤다"며 웃은 뒤 "내 기억으로도 역대 최다 랠리가 아닐까 싶다. 오늘 같은 랠리는 본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날 배구팬들은 일생에 한번 볼까말까 한 진귀한 장면을 봤다.
장충=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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