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신과 의사 "약물의존은 범죄가 아니라 질병…치료 필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0대 여성 A씨는 약물 의존증 환자였다. 수없이 각성제를 끊으려 했지만 끊을 수 없었다. 갈망을 억누르고자 손목을 긋기도 했다. 각성제를 참으면 극심한 공복감이 밀려와 과자를 한꺼번에 입 안 가득 쑤셔 넣었다. 그리고 난 후 체중이 늘어날까 불안해 목구멍에 손을 넣고 토했다. A씨는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각성제를 먹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자신에게 변명했고, 결국 다시 각성제에 손을 댔다.
최근 번역 출간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다다서재)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은 일본의 약물 의존증 권위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마쓰모토 도시히코가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을 묶은 에세이다. 저자는 약물 의존증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약물의존은 범죄가 아니라 질병이라고 밝힌다.
책에 따르면 의존증 환자가 좀처럼 약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약물이 당사자에게 중요한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약물과 함께 살다 보면 즐거운 기억에도, 슬픈 기억에도 모두 약물이 포함된다. 약물 덕분에 일에서 성공을 거두고, 고난을 극복하기도 한다. 약물을 오랜 기간 복용하다 보면 마치 "가장 친한 친구"나 "끈끈한 친구"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약물 의존증의 본질은 '쾌감'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약물을 끊을 수 없는 건, 말 그대로 눈앞에 핑핑 도는 쾌감을 잊지 못해서가 아니다. 약물이 "나를 억눌렀던 고통을 일시적으로 없애주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자는 약물 의존증 환자가 자해, 섭식 장애를 포함한 심각한 트라우마와 고립을 경험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트라우마는 주로 가혹한 성장환경, 가정과 학교에서 당한 폭력, 따돌림 등에서 비롯한다.
대체로 약물 의존자들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홀로 고통을 감내하다 약물에 의지하게 되고, 이는 폭식과 자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저자는 그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이런 병적인 상태로 몰아간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약물 의존증뿐 아니라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살 등 자신이 25년간 의사 생활을 하며 만난 잊을 수 없는 환자들의 일화도 소개한다.
가족을 부양하며 과한 노동을 해내기 위해 불법 약물을 사용하는 환자, 다리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에게 세균을 주사하는 환자 등 다양한 환자들이 책에 등장한다.
책의 결론은 문제를 저지르는 사람을 무조건 단죄하기보다는 그가 떠안고 있는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의존증의 반대말은 맨정신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작가 요한 하리의 말을 인용하며 의존증 환자가 고립되지 않고 다른 사람과 연결되도록 사회가 함께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70회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 수상작.
김영현 옮김. 264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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