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스트레스? 실력이라 믿을래요."
남자프로농구 서울 SK의 선두 행진이 놀라운 정도다. 2024~2025시즌 들어 SK는 앞서 9연승, 10연승으로 '연승쇼'를 한 데 이어 현재 다시 6연승 중이다. 10일 현재 31승7패의 SK는 2위 그룹(울산 현대모비스, 창원 LG)과의 격차가 7.5게임에 이를 정도로 여유있는 선두다.
SK가 과거 챔피언 등극 시절처럼 폭풍 질주를 하게 된 비결로, 전희철 감독의 용병술을 빼놓을 수 없다. SK는 선수 구성 특성상 큰 무대에서 많이 놀아 봤다고 '따로국밥'이 되기 십상인데, 맛깔난 '비빔밥'으로 만들어놨다. 이 과정에서 전 감독은 '당근'보다 '채찍'을 자주 들었다. 선수들에 대한 칭찬보다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 날이 더 많았다. '능구렁이' 선수들이 자칫 자만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 실제 지난달까지만 해도 전 감독은 선수단의 정신력을 질타한 경우가 잇따랐다. 지난해 12월 10일 부산 KCC전 패배 후 "막판에 포기한 자세를 보여서 크게 화를 냈다"고 전했고, 같은달 29일 KCC전 복수에 성공한 후 "이겨서 다행이지만 패한 경기나 마찬가지다. 선수들 집중력 얘기는 그만 해야겠다"고도 했다.
지난달 16일 원주 DB전 승리 이후에도 "우리는 좀 앞선다 싶으면 풀어진다. 더 이상의 자만은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시즌 내내 "우리의 적은 내부에 있다"고 할 정도로 '자만'에 대한 경각심을 줄기차게 강조했다.
그런 전 감독이 최근 달라진 화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그는 지난 9일 수원 KT전(85대74 승)을 앞두고 '고질병'으로 여겼던 '불안한 스타트' 징크스에 대해 "후반에 뒤집어 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믿음'을 뛰어넘어 '실력'이다"면서 "(전반 약세→후반 반전 루틴이)한두 번이면 모를까, 대놓고 그러니 이젠 실력으로 인정한다"며 웃었다. 전 감독의 초반 약세 불안감은 기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올시즌 SK는 전체 공격력(평균 80.3득점) 순위 2위지만, 1쿼터 평균 득점은 19.4점으로 최하위다. 리그 순위-공격력 최하위인 고양 소노(19.5점)보다 낮다. 1쿼터 평균 실점은 전체 6위(20점)에 해당하지만 득실 마진이 '-0.6'으로 기선제압을 당한 채 경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던 셈이다. 반면 4쿼터 평균 실점(평균 16,1점)과 후반(3, 4쿼터) 평균 실점(16.6점)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전 감독 입장에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 후반에 최정예 멤버를 쏟아붓는 농구 특성상 초반부터 끌려가면 벤치 멤버 투입이나 주전의 휴식 타이밍이 꼬이는 등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어려워진다. '기선제압'을 입에 달고 다녔던 전 감독은 마음을 비운 채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제자들의 '실력'으로 스스로 승화시켰다. 그랬더니 부수효과도 나타난다. 9일 KT전에서 SK는 드물게 1쿼터부터 경기 종료까지 한 번도 리드를 내주지 않고 무결점 승리를 거뒀다. 전 감독은 "초반 약세는 요즘 많이 나아지고 있다. 지금 페이스가 좋다"며 '당근'을 내밀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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