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109번 포수 누구죠?"
갑지가 1루측 더그아웃이 술렁였다. 상대팀이 항의라도 할 듯한 움직임이었다.
지난 12일 대만 타이베이돔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대만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간의 친선경기.
롯데 선수단이 경기전 훈련을 하고 있는데, 소란이 있었다. 대만 측에서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은 선수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등번호 109번, 육성선수 포수 박건우였다. 장충고-고려대 출신 박건우는 올해 육성선수로 롯데에 입단한 2002년생 신인 선수.
육성선수가 입단 첫해 1군 스프링캠프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처음부터 스프링캠프 참여 예정인 선수는 아니었다. 유강남 손성빈(퓨처스)의 재활 등으로 포수가 부족해지면서 공식 발표에 앞서 추가 합류가 이뤄진 것. 원래 스프링캠프는 1.5군급 투수들이 대거 합류하는 만큼 포수도 많아야 한다.
때문에 기존의 정보근, 지난해 육성선수로 입단했던 백두산, 올해 4라운드 신인 박재엽과 함께 박건우도 캠프에 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대만 측에 제시한 사전 명단에는 박건우가 없었던 것. 이날의 해프닝은 결국 롯데 측이 박건우의 등번호와 세부 프로필을 제출하기로 하면서 일단락됐다.
물론 국군체육부대(상무)에 1차 합격한 서동욱이나 지난해 1군 출전 경험도 있는 강승구 대신 백두산 박재엽 박건우가 캠프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도 1차적인 성공이었다.
공을 받아줄 포수의 역할이 끝이 아니었다. 실전에 돌입하면서 더욱 빛났다.
대만 WBC 대표팀과의 친선경기 1차전에서 첫 2루 송구가 악송구가 됐다. 하지만 두번째 도루저지는 멋지게 성공했다. 총알 같은 송구로 강견을 과시했다.
친선경기 2차전은 롯데의 실책이 2개나 나왔고, 8회 만루홈런 포함, 5실점 하면서 무너진 경기.
이날 김태형 롯데 감독은 경기 막판 한태양 이호준 이인한 조세진 최항 박재엽 등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선수들을 대거 투입하며 기회를 줬다.
9회 2사 후 대타로 나선 박재엽이 볼넷으로 걸어나갔고, 다음 대타 박건우가 좌중간을 가르는 1타점 2루타를 때리며 1점을 따라붙었다. 싱겁게 끝날 뻔했던 경기 마무리에 텐션을 더해준 한방이었다.
박건우의 존재감은 청백전에서도 빛났다. 원정팀의 선발 포수로 출전한 박건우는 김태형 감독이 꼽은 이날의 수훈선수(야수)로 선정됐다.
과감하고 빠른 송구가 돋보였다. 1회말 지난해 도루 성공률 83.6%, 도루 3위(51개)에 빛나는 황성빈의 도루를 저지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4회말 '롯데 육상부' 1인자로 꼽히는 장두성의 2루 도루 때 실책을 범해 3루를 내줬지만, 곧바로 대포알 같은 3루 견제로 장두성을 잡아내는 짜릿한 장면을 연출했다.
롯데 안방은 현재로선 박건우가 파고들긴 쉽지 않다. 유강남이 돌아왔고, 정보근과 손성빈만 해도 언제든 주전을 노릴 수 있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는 자에겐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 박건우 입장에선 김태형이란 포수 출신 명장 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는 것만으로도 인상적인 첫걸음이다.
박건우는 미야자키 2차 스프링캠프에도 참여하게 될까.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언제든 포수가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김태형 감독은 박건우 이름 세 글자를 떠올릴 것이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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