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장갑은 왜 안 끼고 들고 있었던 걸까.
한 순간 방심, 프로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경기 결과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릴 수 있다는 걸 키움 히어로즈 이주형과 선수단은 제대로 체감한 날이었다.
키움은 2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연장 11회 접전 끝에 5대5로 비겼다. 9회 무사 2루, 10회 2사 만루, 11회 1사 3루 끝내기 찬스를 잡았지만 그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으니 이길 수 없었다. 최하위 키움 입장에서는 이번 3연전 전 6연승으로 잘나가던 KIA를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장식했다면 분위기를 단숨에 바꿀 수 있었지만, 1승1무1패로 만족해야 했다.
끝내기 찬스를 연속으로 날린 것도 아쉬웠지만, 이날 경기 중 가장 아쉬웠던 건 사실 8회말 공격이었다. 4-4 동점 상황. KIA는 필승조 조상우를 올렸다. 키움 선두는 이주형.
상대 허를 찌르는 초구 기습 번트 안타는 훌륭했다. 발 빠른 이주형이 살아나가고, 4번 최주환으로 연결되는 타순이었기에 경기 막판 키움이 흐름을 탈 수 있었다.
하지만 황당한 장면이 연출됐다. 최주환 상대 초구를 던지기 전 조상우의 1루 견제. 타이밍은 여유 있는 세이프. 그런데 상황을 지켜본 1루심이 돌연 아웃을 선언했다.
1년, 아니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장갑 견제사'였다. 발이 빠른 주자들은 도루나 주루 플레이를 할 때 손가락 부상 방지를 위해 전용 장갑을 낀다. 이주형은 왼손 장갑은 착용하고, 오른손은 장갑을 끼지 않고 들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조상우의 견제가 들어왔고, 이주형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오른팔을 뻗었다. 문제는 베이스와 손가락 사이를 장갑이 막아버린 것. KIA 1루수 오선우는 '매의 눈'으로 이 상황을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주형의 등쪽을 계속 태그했다. 그리고 뭔가 확신을 얻었는지 벤치쪽에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판정은 정확했다. 이주형이 장갑을 끼고 베이스를 터치했다면 이는 신체 일부로 인정돼 당연히 세이프였겠지만, 명백히 손가락이 베이스에 닿기 전 태그가 이뤄졌다. 이주형도 본능적으로 '찝찝함'을 직감했는지 슬그머니 손가락을 베이스에 올리고, 일어나서 재빨리 장갑을 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였다.
번트 안타를 치고, 최주환이 타석에 들어오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물론, 베이스 코치와 작전을 논의하거나 숨을 고르는 등의 행동을 하다 장갑을 끼는 시간이 부족했을 수 있고, '설마 여기서 견제가 들어오겠어, 견제가 들어와도 장갑 때문에 아웃되겠어'라고 생각하며 공 하나 보고 나머지 장갑을 껴야지 했을 수 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이 모든게 방심한 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실제 최악의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아웃의 후폭풍은 컸다. 무사에서 주자가 사라졌음은 물론, 비디오 판독 결과에 홍원기 감독이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결과론적으로 홍 감독이 더그아웃에 있었다면 9, 10, 11회 3번의 끝내기 찬스를 모두 놓친 가운데, 경기 흐름이 어떻게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을 이주형의 '장갑 견제사'였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