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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은 냉철한 단기전 승부사다.
두산은 김태형 감독 부임 첫해인 2015년부터 올해까지 6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지난해까지는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성과도 같이 이뤄냈고, 올해를 포함하면 6년 연속 한국시리즈행 무대에 1승만 남았다. 지난 5년의 한국시리즈 진출 사례 중 두산은 2015년과 2016년 그리고 2019년까지 총 3번의 최종 우승을 경험했다. 단기전에 있어서 김태형 감독은 고수의 경지에 올랐다.
그래서인지 김태형 감독은 올해 가을 더욱 '대쪽' 같다. 특히 투수 운용에 있어서 더욱 저돌적으로 밀어부친다. 김태형 감독은 과거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때에도 많은 투수를 쓰지 않았다. 가장 확실한 선발 투수 3명 그리고 필승조 2명으로 사실상 시리즈를 끝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5~2016년의 경우 선발진 4명이 워낙 좋았고, 이현승 김강률 같은 최소한의 필승조로 수월하게 경기를 풀었다.
2017~2018년 우승 실패 이후,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는 과거보다 약한 선발진 대신 불펜 강화를 택했다. 선발 이용찬을 뒤로 돌리고 마무리로 쓰면서 기존 필승조를 연결 고리로 선택하는 승부수를 띄웠고 적중했다. 결국 김태형 감독은 단기전에서 확실한 선발+마무리로 안정적인 조합을 추구한다. '벌떼 야구'는 애초에 지향점이 아니다.
올해에도 구상은 명확해 보였다. 라울 알칸타라, 크리스 플렉센이 선발진 핵심을 이루고 사이드암 최원준을 '키맨'으로 활용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핵심 필승조 역할을 했던 최원준은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 선발로 등판했다. 2선승제인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선발 2명으로 시리즈를 끝냈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최원준까지 선발 3명이 나섰다. 불펜은 이승진이 중심 그리고 이영하가 뒤를 맡았다. 심플한 구성이다.
그러다보니 특성상 등판을 못하는 투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플렉센의 컨디션이 워낙 좋은데다 불펜진도 구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또다른 선발 요원인 유희관이나 함덕주 김강률 윤명준 등 지난해까지 필승조로 뛰었던 투수들조차 이번 포스트시즌 4경기에서 아직 한차례도 등판하지 못하고 있다. 등판 기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불확실'을 경계하는 감독의 특성이 드러난다. '지금 당장 통할 수 있는 선수'로 모든 변수를 차단하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10일 열린 2차전 승리는 의미가 깊다.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처음 오른 '불확실한' 투수가 베테랑 감독의 예상을 깼기 때문이다. 선발 최원준이 흔들리자 김태형 감독은 3회부터 불펜을 가동했다. '조커'를 맡아줄 것이라 생각한 두번째 투수 김민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박치국 카드를 꺼내 급한 불을 껐다. 그리고 두산이 달아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등판한 홍건희의 활약은 단기전 승부사의 예측을 뛰어 넘는 결과였다. 홍건희는 이날 2⅓이닝동안 '퍼펙트'를 기록하며 마무리 이영하에게 편안한 9회를 선사했다.
사실 정규 시즌 후반기에 보여준 홍건희의 투구 내용을 고려했을때 김태형 감독의 1순위는 결코 홍건희가 아니었다. 이승진이 워낙 돋보이기도 했지만, '경험 부족'이라는 불확실성이 홍건희의 매력을 감소시켰다. 김태형 감독도 시리즈 전 홍건희의 역할을 쉽게 단정짓지 못했다. 믿음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2차전에 홍건희를 내면서도 두산 벤치가 그에게 바란 역할은 '최대 1이닝'이었다. 이승진-이영하로 이어지는 투수들이 뒤를 막아주기 전까지만 버티는 게 홍건희의 임무였다.
하지만 숱한 경험을 치른 감독의 예상을 보란듯이 비껴나간 홍건희는 데뷔 후 10년만에 처음으로 오른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올 시즌 최고의 피칭을 펼쳤다. 불확실성을 가진 선수가 단기전에서 터졌을 때 팀 승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 셈이다. 두산 벤치 입장에서는 또다른 확신과 희망을 얻은 결과였다.
고척=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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