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인터뷰 종합] "들이받고 싶은 적도 많아"…설경구가 밝힌 '우상'의 지독한 집요함

기사입력 2019-03-08 15:06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왜 자꾸 어려운 역할만 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스릴러 영화 '우상'(이수진 감독, 리공동체영화사 제작)으로 3월 스크린을 찾은 배우 설경구(51). 그가 극한 도전을 시도한 '우상'에 대해 소회를 전했다.

'우상'에서 아들을 잃고 비통함에 빠져 사고의 비밀을 밝히려 애쓰는 아버지 유중식을 연기한 설경구. 그가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우상'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우상'은 지난 2014년 개봉한 독립 장편 데뷔작 '한공주'로 데뷔, 섬세하고 집요한 연출로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게 극찬을 받고 마라케시국제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청룡영화상 등 국내외 영화계를 휩쓸며 단번에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수진 감독의 신작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중. '한공주'보다 더 묵직하고 짙은 메시지는 물론 강렬하고 파격적인 전개로 여운을 남긴 '우상'은 충무로의 연기 신(神)이라 손꼽히는 한석규와 설경구, 그리고 '한공주'로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천우희의 열연으로 극강의 몰입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히 '박하사탕'(00, 이창동 감독) '공공의 적'(02, 강우석 감독) '오아시스'(02, 이창동 감독) '광복절 특사'(02, 김상진 감독) '실미도'(03, 강우석 감독) '열혈남아'(06, 이정범 감독) '그놈 목소리'(07, 박진표 감독) '해운대'(09, 윤제균 감독) '감시자들'(13, 조의석·김병서 감독) '소원'(13, 이준익 감독)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17, 변성현 감독) '1987'(17, 장준환 감독) 등 수많은 인생 캐릭터와 대표작들을 만들며 명실상부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인정받은 설경구는 '우상'에서 또 한 번의 파격 변신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죽은 아들이 연루된 사고의 비밀을 파헤치는 집요한 부성애와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비통한 심정,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뒤섞인 캐릭터 유중식을 빚은 설경구는 데뷔 이래 최초로 노랗게 탈색하며 파격적인 비주얼의 변화를 준 것은 물론 가장 뜨거우면서 가장 차가운 감성 열연을 펼쳐 한계 없는 '명품 배우'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날 설경구는 "처음에 '우상'은 이수진 감독, 한석규 선배가 합류한다고 해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또 '우상'은 시나리오를 읽고 촘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으면 느낌만 보려고 가볍게 읽는데 '우상'은 그렇게 읽어서는 모르겠더라. 다시 정독하며 읽어나간 작품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독파하고 촬영까지 한 나는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7일) 시사회 이후 관객이 어떻게 봤을지 궁금해 반응을 물었는데 예상대로 어렵다는 평도 많더라. 시나리오를 처음 받을 때부터 친절한 시나리오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나온 것 같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앞서 '우상'은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섹션에 공식 초청돼 전 세계 영화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바. 베를린영화제 당시 '우상'을 처음 봤다는 설경구는 "베를린영화제 '우상'의 완성판을 처음 봤는데 영화를 보고 난 뒤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게 모든 관객이 다 좋아할 영화는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을 우리끼리 했다"고 덧붙였다.


전체적인 이야기도 이야기였지만 캐릭터에 대한 이해 역시 쉽지 않았다는 설경구. 그는 "최련화(천우희)나 구명회(한석규)가 돌파하는 캐릭터라면 유중식은 그와 달랐다. 세 명의 배우가 나오는데 유중식은 듣는 캐릭터더라. 내 의지로 뚫는 캐릭터가 아니라 주변의 캐릭터에 리액션하는 캐릭터였다. 대부분의 메인 캐릭터는 돌파하면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데 유중식은 그런 게 아니어서 힘들었다"며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매번 쉽지는 않았다. 그동안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가는 캐릭터를 연기했고 그런 캐릭터에 익숙한데 내가 돌파하는 캐릭터도 아니라는 지점에서 낯설었다. 누군가로 인해 가는 가야 하는 캐릭터가 낯설었다"고 고백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생애 첫 탈색을 시도한 설경구는 "'우상'을 촬영하면서 6개월간 탈색을 유지해야 했다. 검은 머리가 조금만 올라와도 극의 흐름을 끊기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 탈색을 해야 했다"며 "한 번은 한 달간 내 분량의 촬영이 2번 있었던 적이 있었다. 한석규 선배의 촬영이 먼저 진행됐고 캐릭터를 만날 일이 별로 없어 2~3주간 촬영을 쉬었는데 그때 염색만 계속했던 것 같다. 2주 만에 촬영장에 가고 그랬는데 여러모로 힘들더라. 살면서 한 번도 노란 머리로 탈색은 안 해봐서 재미는 있었는데 이게 6개월간 이어질 줄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려웠던 캐릭터를 소화한 것에 이어 첫 호흡을 맞추는 이수진 감독과의 합도 녹록하지 않았다는 설경구는 "이수진 감독은 유중식의 캐릭터에 대해 링 위에 올라가기 직전의 선수'라고 하더라. 이수진 감독은 근래에 보기 드문 집요함을 가진 감독이다. 정말 집요하다. 요즘에는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돼 있어서 쉽지 않았는데 그래도 집요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무엇보다 설경구는 "솔직하게 한 번 이수진 감독에게 들이받으려고 한 적도 있다. 촬영을 끝낸 뒤 술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수진 감독과 서로 들이받으려고 했는데 한석규 선배가 '경구야 하지 마라'라고 말려 진짜 들이받지는 않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우상'에서 내 첫 촬영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는 뒷모습을 찍은 롱테이크 장면이었다. 그 장면만 스무 번 넘게 찍은 것 같다. 새벽부터 찍었는데 그때 '아, 이런 감독이구나' 싶었다. 집요한 감독 중에는 이창동 감독도 있는데 이수진 감독과 다른 집요함이 있었다. 물론 이수진 감독과 또 작업하고 싶다. 좀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리듬으로 호흡을 맞추면서 다시 한번 작업하고 싶다"고 당시를 곱씹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힘들었던 작품이었던 '우상'이었지만 위로를 받고 웃을 수 있었던 건 후배 천우희의 긍정파워였다. 설경구는 천우희와 호흡에 대해 "천우희가 맡은 최련화 캐릭터도 나 못지않게 쉽지 않다. 최련화 캐릭터도 나처럼 신이 설명하는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로 인해 설명되는 캐릭터였다. 여배우로 쉽지 않은 캐릭터인데 굉장히 잘 소화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로 나는 현장에서 예민한 편인데 천우희는 허허실실 웃고 넘기더라. 나는 현장에서 투덜이다. 한번은 궁금해서 물으니 '징징대는 걸 싫어해 그냥 웃어넘기려고 한다'고 하더라. 정말 많이 배웠다. 천우희에게도 '내가 너한테 많이 배운다'라고 말했다. 물론 말처럼 다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배울 게 많은 배우다"고 답했다.

선배인 한석규에 대해서는 "한석규 선배는 현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전체를 보는 배우였고 흔쾌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선배였다. 안정감을 위해 달리는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설경구는 자신만의 우상에 대한 소신도 덧붙였다. 실제로 '불한당' 이후 막강한 팬덤을 얻은 설경구는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제3의 전성기를 이끄는 중. 그는 "'지천명 아이돌'이라고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나는 아이돌은 아니다. 나이 50줄에 무슨 아이돌을 하겠나? 나를 좋아해 주는 팬들은 내겐 좋은 친구들과 같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나를 언제나 응원해주는 '같은 편 친구들'인 것 같다. 실제로 '우상'이라는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상은 숭배라는 느낌이 있어서 별로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우상'의 유중식만큼 살면서 집착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만 연기에 집착하는 것은 있다. 배우는 작품에서 잘 표현되고 싶어 하고 작품을 잘 만들고 싶어 하지 않나? 그 정도는 집착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호불호가 강할 '우상'에 이어 설경구는 곧바로 세월호 참사로 상처를 입은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생일'(이종언 감독)로 4월 관객을 찾을 예정. 매 작품 쉽지 않은 선택을 이어간 설경구는 "왜 자꾸 어려운 역할만 오는지 모르겠다. 이상하게 어려운 작품들만 제안이 들어온다. 매번 '어떻게 하지?' 걱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운 지점은 생기더라. 하게끔 되니까 이런 작품을 선택하는 게 아닐까"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한편, '우상'은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정치 인생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 남자와 목숨 같은 아들이 죽고 진실을 좇는 아버지 그리고 사건 당일 비밀을 간직한 채 사라진 여자, 그들이 맹목적으로 지키고 싶어 했던 참혹한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등이 가세했고 '한공주'의 이수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20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CGV아트하우스


무료로 보는 오늘의 운세

눈으로 보는 동영상 뉴스 핫템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