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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로 돌아온 손원평 "피하고 싶은 미래 체험시키고 싶었죠"

기사입력 2025-07-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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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고령화·세대갈등 그린 다섯번째 장편 '젊음의 나라'

1인칭 일기 형식 서술…"집필하는 데 가장 오래 걸린 소설"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우리가 걱정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으로 그려보지는 못하는 미래의 여러 가능성에 살을 붙여서 '이런 미래가 올 수 있다'는 걸 독자가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소설 '아몬드'를 세계 30여개 국가에 수출한 작가 손원평(46)이 장편 '젊음의 나라'(다즐링)를 펴냈다. 가까운 미래 극심한 고령화가 현실이 된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으로, 손원평의 첫 SF(과학소설) 장편이다.

손원평은 지난 28일 전화와 서면으로 진행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를 체험한 독자가 현재를 돌아보고 우리 사회가 지금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논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이번 소설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예전부터 저출생 고령화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었고, 2020년 단편 '아리아드네 정원'에서 미래의 노인 수용시설 이야기를 다뤘다"며 "그 작품을 장편으로 쓰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품은 여러 씨앗이 시간을 두고 발아했을 때 어떤 모습이 될지, 독자에게 유의미한 이야기를 가능하면 재미있게 풀어보고 싶어서 도전하는 심경으로 시작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젊음의 나라'는 가까운 미래 고령화로 절대다수의 노인과 소수의 청년이 살아가는 한국의 이야기다.

극히 일부 재력가는 남태평양의 섬 '시카모어'에서 호화롭게 생활하지만, 나머지 노인 대부분은 민간 시설 '유카시엘'에 수용된다. 유카시엘의 노인들은 재력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등급이 낮을수록 열악한 시설에 수용된다.

청년의 삶도 녹록하지 않다. 주인공 유나라는 한창 일할 29세지만 기계들과 더 어린 사람들에게 밀려 쉽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시카모어 섬의 극단에 들어가길 꿈꾸는 그는 아르바이트비를 버는 족족 시카모어 가상현실(VR)에 접속해 현실에서 도피한다. 운 좋게도 시카모어와 업무협약을 맺은 유카시엘에서 상담사 일을 하며 기회를 노린다.

손원평은 "한국,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가 가진 고령화 문제는 사회의 많은 풍경을 바꿔 놓을 것이라고 본다"며 "청년이라는 이름에 담긴 푸르름도 조금은 빛바랜 느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설은 기계화로 인한 인간 소외 현상, 노인 인구와 함께 늘어난 존엄사, 외국인 이민자의 급증, 극단적 혐오와 차별 등을 미래 한국의 모습으로 그렸다.

손원평은 "이런 미래가 올 거라는 우려가 한때의 기우에 그치려면 현재의 우리는 미래를 미리 내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소설에서 고령화와 함께 눈에 띄는 사회 현상은 청년과 노인 사이의 세대 갈등이다. 유나라는 상담사 근무 첫날부터 노인에게 모함당한다. 청년들은 노인 혐오 집회를 열고, 이 집회에는 노인 요양 병원 간호사도 참여한다.

손원평은 세대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경쟁이 심해지고 각자도생의 풍조가 만연해져서, 삶이 너무 고단해서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적기 때문인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러면서 "제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불행히도 앞으로 세대 갈등은 당분간 점점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세대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반문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노인 인구를 떠받치는 젊은 층이 과연 어떻게 윗세대를 배려하고 이해할까요. 어쩌면 이 소설은 제가 그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쓴 건지도 모르겠네요."

손원평의 장편소설은 이번이 다섯 편째다.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아몬드' 외에도 '서른의 반격', '프리즘', '튜브'를 펴냈다. 단편소설집 '타인의 집', 어린이책 '위풍당당 여우꼬리' 시리즈도 출간했다.

작가로서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았지만, '젊음의 나라' 집필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번 소설을 집필하는데 약 1년 4개월이 소요돼 지금까지 쓴 작품 중 가장 긴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손원평은 "지금과 다른 미래의 모습이 글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려고 애썼고, 그 때문에 오래 걸린 것 같다"며 "정말이지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집필을 어렵게 한 또 하나의 이유는 독특한 서술 형식이다. '젊음의 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유나라의 날짜별 일기로 이뤄져 있다.

손원평은 일기 형식을 택한 데 대해 "독자를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이입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라의 내밀한 절망과 소망, 비밀과 환희를 표현하고, 독자가 일기를 훔쳐 읽듯 흐름을 따라가길 바랐다"고 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작가로서 해보지 않았던 서술적 실험을 하고 싶었다"며 "쓰면서 정말 힘들어서 평범한 1인칭으로 바꾸는 방법도 고민했는데,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많이 쓴 뒤였다"고 떠올렸다.

292쪽.

jaeh@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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