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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경의 J사커]'97회' 일왕배, FA컵에 던지는 화두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8-01-03 22:42


ⓒAFPBBNews = News1

97회 일왕배 주인은 윤정환 감독과 A대표팀 수문장 김진현의 세레소 오사카였다.

세레소는 요코하마 F.마리노스를 상대로 연장접전 끝에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올해 J2(2부리그)에서 승격한 세레소는 리그컵에 이어 일왕배까지 들어올리며 1995년 프로 전환 이후 22년간 이어진 '무관의 한'을 시원하게 풀었다.

일왕배는 1921년 일본축구협회(JFA) 창설과 동시에 시작됐다. 100년 간의 발걸음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첫 대회에선 지역예선 우승팀이 결선에 기권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잉글랜드축구협회가 창설을 기념해 기증한 트로피는 1945년 태평양전쟁 당시 고철 부족에 시달리던 구 일본군에 '강제공출' 당해 용광로에 녹아내렸다. 1971년까지 프로, 대학 상위 각각 4팀씩만 참가해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쇼와 일왕의 경기 관람을 계기로 '일왕배'라는 명칭을 붙였고 흥행을 위해 '쇼오가쓰(正月·1월 1일) 도쿄국립경기장에서 결승전 개최' 같은 아이디어를 짜내는 등 갖은 노력으로 결국 100년을 바라보는 자랑스러운 토너먼트 대회를 만들어냈다.

한국 축구의 역사도 어느덧 100년의 역사를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축구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할 만한 대회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1996년부터 시작된 FA컵, 유구한 역사를 상징하기엔 부족해 보인다. 대회 방식이 바뀌기 일쑤였고 텅빈 관중석은 이제 '흥행'이라는 단어가 무색하다. 'ACL 출전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웃지못할 꼬리표까지 뒤따라다닌다. 초라하기만 한 대회를 두고 '한국 축구 최고 권위의 대회'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조차 쉽지 않다.

'역사의 파편'도 여전히 흩어져 있다. 1921년 개최된 '전조선축구대회'나 1935년 경성축구단의 일왕배 우승, 1936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준우승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할 만한 사건들은 수두룩했지만 이를 제대로 한데 모으지 못했다. 1946년 조선축구협회가 창설해 2000년까지 명맥을 이어온 전국축구선수권 역시 2001년 FA컵에 '통합' 됐으나 그동안의 역사는 분리되어 있는 등 산재된 모습이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좀 더 큰 그릇에 담아낼 수는 없을까. 지금까지 이어져 온 FA컵 시스템은 변화와 개정을 거쳐 어느 정도 틀을 잡았지만 여전히 '축구인들 만의 잔치'에 그친다는 평가가 크다. 잦은 변화로 흥행 동력을 잃었고 의미를 찾기도 쉽지 않아졌다. 대회의 의미를 확대 개편하고 규정, 상금제등을 보완하는 등 외연을 넓힌다면 잃었던 권위와 흩어진 역사를 모으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자랑스러운 한국 축구의 역사적 의미가 담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평축구, 통일축구 등 우리가 만든 역사를 한 자리에 담을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일왕배의 97회 역사도 결국 '기억의 조각'에서 출발했다. '전일본축구선수권'으로 시작됐으나 메이지신궁대회, 동서대항전, NHK트로피 등 각종 대회와 합병, 분리 등을 계속해왔다. JFA는 이런 흐름을 모두 일왕배의 한 부분으로 포용하면서 역사를 만들었고 스스로 최상위 대회라는 권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작이 반이다. 최고 권위의 FA컵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스포츠2팀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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