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항공사가 직원들의 도 넘은 기강해이 사례에 대해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후배 직원을 성희롱하고, 공모전 수상작 이름을 바꿔치기한 직원 등에 대해 경징계 처분에 그친 것.
공사는 국토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현재 김포, 대구, 광주, 양양, 원주 등 국내 14개 공항을 운영·관리하고 있다.
공사의 안일한 대처 논란은 지난 3월 한 공항 종합상황실 조직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서 시작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유경준 의원(국민의힘)이 한국공항공사에게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공사 직원 A실장은 지난 3월 회식자리에서 한 여직원에게 특정 신체 부위를 지목하며 '살 좀 빼라'고 말했다.
며칠 뒤 A실장은 또다시 직원의 신체 부위를 지목해 외국인과 비교하는 등 문제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가 지난 3월 18일 성희롱·성폭력 고충 상담원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본사에서 이를 인지하는 데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A실장은 5월 8일이 돼서야 다른 공항으로 분리 전보 조치됐다. 약 2개월이 지날 때까지 공사가 피·가해자를 완벽하게 분리하지 않아 늦장 대응이라는 지적을 받은 대목이다. 공사 측은 4월 4일부터 피·가해자의 사무실을 분리 조치했다고 밝혔지만, 같은 공항에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마주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던 셈이다.
게다가 신고 이후부터 분리 조치 전까지 A실장은 '피해자가 타 지역 전보를 희망해서 성희롱 신고를 했다'는 소문을 유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공사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A실장의 이 같은 행위를 확인하고도, 내려진 징계 수위가 견책에 그쳤기 때문이다. 공사의 징계 수위는 견책, 감봉, 정직, 강등, 해임, 파면으로 구분하는데, 견책은 가장 낮은 징계 수위다.
공사가 징계 결정에 대해 "신고인들이 배치되기 전까지 남자직원들만 근무하던 환경으로 인해 성인지 감수성이 높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를 들자 정치권에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지적했다.
공사 직원들은 연간 총 4시간, 4대 폭력 교육을 통해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등 예방 교육을 이수하고 있다. 2020년도 기준 이수율이 98.7%, 2021년 99.8%, 2022년 99.5%에 이르는 상황으로 해당 교육을 받은 A실장의 성인지 감수성이 낮다고 볼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유경준 의원은 "남고 출신이라고 감경해 줄 것이냐"며, "성희롱 신고 두 달 뒤에야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 조치한 공사가 결국 2차 가해를 방치한 셈"이라고 말했다.
공사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개인 일탈 문제로 분리하고,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 적정한 기준에 근거해 징계한 것"이라며 "본사에서 문제를 파악한 뒤로는 가해자를 근무 배제하고, 별도의 사무실에 분리했다"고 말했다. 이어 "분리 조치가 늦어졌던 점은 일부 인정하며 피해자 보호 등에 대한 교육과 홍보, 성폭력 예방 지침의 재개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후배 공모작 훔쳐 수상…가장 낮은 징계 '견책' 처분
이번 일을 계기로 공사의 운영 행태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커지면서 앞선 특정감사에서 나왔던 갑질 문제와 안일한 처벌 문제도 뒤늦게 수면위로 떠올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두관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공사로부터 제출 받은 올해 1월, 3월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공항 내 기강해이 사례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 B씨는 '공항 항공 보안 발전 아이디어 공모전' 당시 공모 담당자 C씨에게 후배의 응모작을 자신이 제출한 것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이름표가 바뀐 응모작으로 B씨는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공사는 이들에 대해서도 견책 처분하는 데 그쳤다. 청탁을 받은 C씨의 경우에는 해당 공모전의 직접적인 관계자로서 혐의가 더 크다고 보고, 당초 '감봉 1개월' 조치가 내려졌다. 하지만 공사는 과거 표창 기록을 이유로 처분을 견책으로 낮췄다. B씨는 현재 당초 근무지가 아닌 타 공항으로 전보를 간 상태다.
이 밖에도 직원 D씨가 역시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출퇴근을 위한 '카풀'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16일간 29차례 직원들의 차에 탑승하고, 조기퇴근·수당 초과수령 등을 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징계 수위는 감봉에 그쳤다.
김두관 의원은 "한국공항공사는 국가의 관문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중요한 책무를 지닌 곳인데, 직원들의 기강해이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며 "고강도 감찰을 통해 조직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사 관계자는 "C씨의 경우 청탁금지법에 따라 더 강한 법적인 책임을 물으려 했지만, 앞선 포상 사례로 감경된 것"이라며 "이는 모두 자체 기준에 따라 인사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강우진 기자 kwj1222@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