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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 불가능" 반박 나오지만 의혹 해소 안 돼
폭로 내용의 진위는 아직 명확히 판가름 나지 않았으나, 3개월 전 신임 교황 레오 14세가 즉위한 이래 투명성을 강조해 온 교황청은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은 11일(현지시간) 가톨릭 교계 이슈를 다루는 전문 탐사·분석 보도매체 '더 필라'(The Pillar)의 기사들을 인용해 리베로 밀로네 전 교황청 감사원장의 폭로를 전했다.
밀로네 전 감사원장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시스템을 통한 은행간 국제송금 거래 기록에서 쓰이는 국제은행계좌번호(IBAN)를 조작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도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청 당국을 상대로 부당해직을 인정해달라는 소송을 냈으나 지난달 각하 당한 후 이런 내용을 폭로했다.
더 필라는 IBAN 조작 도구는 "돈세탁을 위한 만능열쇠"라며, 만약 밀로네 전 감사원장의 주장이 입증된다면 "교황청은 국제금융 블랙리스트 중에서도 가장 엄중한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국제 은행 시스템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럴 경우 "문자 그대로 물리적 현금을 제외하고는 어떤 돈도 나가거나 들어올 수 없게 될 것"이라며 교황청이 금융거래를 아예 하지 못하게 되는 이런 사태를 '핵겨울'(nuclear winter)이라고 표현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밀로네 전 감사원장은 지난 주 기자회견을 열어 더 필라의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고 말했으나 "누군가를 협박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추가로 내용을 폭로하거나 자료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초대 교황청 재무원장이던 호주 출신 조지 펠 추기경의 요청으로 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IBAN 조작 도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폴리티코는 이런 조작 도구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교황청이 반박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폭로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폭로가 신빙성 있는 인사들로부터 나온 데다가 교황청에 비위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밀로네 전 감사원장은 대형 글로벌 회계감사업체인 딜로이트에서 고위 임원을 지냈으며 2015년에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신설된 5년 임기 직책인 초대 교황청 감사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교황청의 회계부정 의혹을 조사하라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보안정책 위반과 고위 성직자들 관련 미승인 조사 등 의혹이 제기돼 바티칸시국 국가헌병대의 수사를 받게 됐으며, 자진 사임하지 않으면 기소하겠다는 위협을 받고 2017년 사임했다.
당시 밀로네에게 감사원장직 사임을 종용한 인사는 교황청 국무원 국무장관이던 조반니 안젤로 베추 추기경과 바티칸시국 국가헌병대장이던 도메니코 지아니였다.
밀로네와 교황청 근무 시기가 겹치는 펠 재무원장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회계투명성 강화에 드라이브를 걸던 2014년에 초대 재무원장으로 임명돼 일하다가 아동 성학대 의혹이 제기돼 2017년 재무원장직을 그만뒀다.
펠 전 재무원장은 호주로 귀국해 호주 당국과 교황청의 수사를 받았으나 2020년에 무혐의 판정을 받았으며, 2023년 선종했다.
밀로네 전 감사원장의 사임을 종용했던 베추 전 국무원 국무장관은 2018년 추기경에 임명되고 시성성 장관직에 올랐으나, 2020년에 재정비리 의혹으로 장관직을 사임했으며 2023년 12월에는 바티칸시국 1심 법원에서 횡령과 사기 등 혐의로 징역 5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항소 중이다.
limhwasop@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