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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20년 '피라미드 마라톤대회' 10㎞ 부문에 참가한 적 있다.
수천 명이 카이로 인근 기자지역의 사막에서 거대한 피라미드를 불과 수백m 눈앞에 두고 뛰었다.
인류의 고향 아프리카 대륙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달리는 것이 참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2.195㎞를 달리는 극한 스포츠 마라톤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가는 아프리카 동부 케냐다.
장거리 육상에서 케냐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하면서 에티오피아와 쌍벽을 이룬다.
현재 남녀 마라톤 세계 기록도 모두 케냐 선수들이 세웠다.
케냐의 켈빈 키프텀은 2023년 10월 미국 시카고마라톤에서 2시간00분35초로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넉 달 뒤인 2024년 2월 교통사고로 숨졌다.
여자 마라톤 세계 기록은 케냐의 루스 체픈게티가 2024년 10월 시카고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09분56초다.
마라톤을 얘기할 때 특이한 점은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케냐 선수들의 상당수가 칼렌진 종족이라는 사실이다.
케냐 나이로비 케냐타대의 빈센트 오니웨라 교수는 2019년 11월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케냐가 주요 국제 달리기 대회에서 따는 금메달의 약 73%가 칼렌진족 선수들에게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라톤 스타 엘리우드 킵초게(41)가 칼렌진족이다.
킵초게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남자 마라톤을 제패했다.
또 2019년 10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네오스(INEOS) 1:59 챌린지'에서 풀코스를 1시간59분40초에 달렸다.
세계육상연맹이 인정하는 공식 마라톤 대회가 아니었지만, 인류 최초로 마라톤 '2시간 벽'을 돌파했다.
칼렌진족 여자 선수의 경우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 최초로 4차례 우승한 캐서린 은데레바(53)가 유명하다.
칼렌진족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계기로 수십년간 국제 무대에서 명성을 쌓았다.
인구가 약 5천500만명인 케냐에는 종족이 40개가 넘는데 유목민의 후예인 칼렌진족은 13% 정도를 차지한다. 윌리엄 루토 현 대통령도 칼렌진족 출신이다.
칼렌진족은 케냐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고원 지대인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에 모여 산다. 주요 농산물은 차, 화훼, 옥수수 등이다.
특히 엘리트 마라톤 선수들이 많이 훈련하는 이텐 지역은 해발고도가 거의 2천400m다.
지구촌 학계와 언론계는 그동안 칼렌진족이 유난히 장거리 달리기에 강한 비결을 밝히는 데 노력해왔다.
칼렌진족의 유전학적 특징과 훈련, 음식 섭취를 비롯한 생활 양식, 자연 등 환경적 요인이 연구 대상에 포함됐다.
우선 칼렌진족은 신체적으로 다리가 가늘고 가볍기 때문에 적은 에너지로 달리는 데 적합하다는 가설이 있다.
고원 지대에서 생활하는 만큼 심폐지구력을 강화하기에 유리하다는 분석도 꾸준히 나온다.
또 칼렌진족은 어렸을 때 집에서 먼 학교까지 뛰어서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장거리 달리기에 숙달하게 된다는 견해가 있다.
에미 제로노 킵소이 주한 케냐 대사도 2024년 12월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힌 바 있다.
빈곤층이 많은 케냐에서는 마라톤 등 육상으로 세계적 스타가 될 경우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다.
오늘도 칼렌진족을 비롯한 많은 케냐 젊은이가 세계 최고의 마라톤 선수가 되려고 땀을 흘린다.
케냐인들이 앞으로도 국제 마라톤 대회에 위용을 뽐내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지 주목된다.
nojae@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