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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배구여제' 김연경(29·중국 상하이)의 작심발언이 의도와 달리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사태가 커지면서 당혹스러웠던 김연경은 직접 해명에 나섰다. "내 의견은 대표선수의 관리 뿐만 아니라 인재 발굴과 육성할 수 있는 시스템의 필요성이었다. 이를 설명하는 도중 이재영의 실명이 거론됐다. 그러나 이는 이재영 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모든 선수에게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정작 김연경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건 따로 있었다. 매년 반복되는 비 시즌 기간 그랑프리 등 국제대회 때마다 꾸려지는 대표 선수 명단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즉,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주먹구구식 시스템을 겨냥한 작심발언이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부도를 맞자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다. 악순환이 이어졌다. 선수들에겐 더 이상 희생을 강요할 수 없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태극마크 가치 하락을 협회가 스스로 자초했다. 남자 선수든, 여자 선수든 협회 강화위원회에서 꾸리는 명단에 포함되고 싶어하는 선수는 찾아볼 수 없다. 실익도 명예도 없다. 국가대표로 국제대회를 마치고 소속팀으로 돌아갔을 때 비 시즌 기간의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은 없다. 오히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부상치료만 늦어진다는 불만만 쌓인다.
협회 요직에는 배구인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그러나 사실 이들 중 후배들을 위해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이들은 드물다. 한국배구 발전과 후배들에게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사명감보다는 자리 지키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 결과가 배구협회의 암담한 현주소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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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이 있긴 하다. 협회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협회는 지난 10년간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는 것이 많은 배구인들의 진단이다. 부활은 해야하는데 자생능력이 없는 상황. 그렇다면 자존심을 내려놓는 수 밖에 없다. 용단이 필요하다. 성인대표팀 운영권을 KOVO에 넘기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프로축구연맹의 구조를 제외하고 대한야구협회-한국야구위원회와 대한농구협회-한국농구연맹의 구조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더 큰 조직의 도움을 받아 일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 KOVO는 협회와 달리 조직 내 전문가들이 많다. 마케팅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노하우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올해에는 베트남에서 올스타전까지 치를 만큼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축적된 마케팅 노하우를 활용해 파이를 키우고 이 수익을 협회와 나누면 된다. 이것이 곧 상생의 길이다.
물론 KOVO의 인내도 요구된다. 협회가 재정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성인대표팀 운영을 떠안아여 한다. 책임감이 필요하다. 내부적으로 업무가 많아졌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성인대표팀 운영을 위한 인원 충원도 가능하고, KOVO 입장에선 마케팅 수단이 늘어난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을 구분해야 한다. 자립이 버겁다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KOVO의 지원을 받는다면 협회는 한국배구의 미래를 위한 유소년 발굴과 청소년대표팀 운영에 집중할 수 있다. 하루라도 빨리 윈-윈 전략을 모색하고 실행하는 것이 상생의 길이다.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