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패티김은 이미자와 함께 한국 가요의 초석을 마련한 디바로 꼽힌다.
본명은 김혜자로 1958년 미국 제8군 무대에서 고 박춘석 작곡가의 번안곡 '틸'과 '파드레'를 부르며 데뷔했다. 이후 1959년 미국 가수 패티 페이지의 이름을 본따 패티김이란 예명을 짓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54년간 정상의 위치에서 군림하며 '초우' '그대 없이는 못살아' '9월의 노래' '서울의 찬가' '이별' '가시나무새' '향수'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음악은 트로트와 록 음악, 포크 음악이 주류를 이뤘던 당시 가요계 트렌드에서 탈피, 가요에 서구적인 요소를 가미한 스탠다드 팝 장르의 성격을 띄고 있어 센세이션을 안겼다. 때문에 패티김은 '스탠다드 팝의 별'이란 애칭을 갖고 독보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1962년 대한민국 최초로 리사이틀 공연을 시작했고, 1971년 디너쇼를 시도했다. 이후 일본 등 동남아시아와 미국 등 서구권까지 진출, 카네기홀과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공연을 성사시키는 등 '원조' 한류 가수로서 활동해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8년 대중 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공연을 개최했고,1996년에는 문화훈장(5등급)을 받기도 했다.
1996년 말 작곡가 길옥윤을 만나 결혼, 1972년 이혼했으며 슬하에 딸 정아 양과 카밀라를 두고 있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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