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에서도 영역 파괴가 시작된 것일까? 타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이나 출연자들을 예능의 주요 소재로 적극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BC 프로그램에서 KBS나 SBS같은 타 방송사의 이름을 말하는 것도 금기시됐던 상황임을 고려하면 꽤 큰 변화다.
시청률 40%를 웃돌며 열풍을 일으켰던 MBC '해를 품은 달'의 경우, 케이블은 물론 경쟁사인 KBS와 SBS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다. KBS2 '개그콘서트-감수성' 코너에는 어린 훤 여진구가 카메오 출연해 드라마 속 장면을 패러디하며 웃음을 안겼고, '승승장구'에는 국무 녹영 역으로 사랑받았던 전미선이 초대됐다.
SBS '강심장'에도 '해를 품은 달'의 아역배우 이민호와 임시완이 동반 출연해 드라마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지난 25일 방송된 '런닝맨'의 게스트 한가인은 드라마의 주요 소재였던 기억상실 코드와 첫사랑을 접목시킨 '첫사랑 레이스'라는 게임을 펼쳤다. 훤과 연우가 처음 만날 때 우산이 떨어지고 꽃잎이 날리던 명장면도 패러디됐다.
각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과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앞다퉈 김수현과의 인터뷰를 내보내며 김수현 신드롬을 조명하느라 바빴다. SBS '좋은 아침'은 악역 윤대형 역을 맡았던 김응수의 휴먼스토리를 취재하면서 '해를 품은 달' 종방연 현장까지 카메라에 담았다. 이쯤 되니, KBS와 SBS가 '해를 품은 달' 홍보를 도와줬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KBS는 얼마 전 보도자료를 통해 윤유선이 1일과 2일 이틀간 '임백천의 라디오 7080'의 스페셜 DJ를 맡게 됐다는 소식과 안내상, 윤계상의 게스트 출연에 대해 소개하며 "임백천의 라디오 7080에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종방연이 열린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때론 프로그램 자체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얼마 전 '개그콘서트'는 SBS 'K팝스타'를 패러디한 'K잡스타' 코너를 선보이면서 심사위원 양현석, 박진영, 보아의 캐릭터와 심사평까지 가져와 재치있게 변형해 눈길을 끌었다. 심지어 MBC '무한도전'은 SBS '짝'의 형식과 내용을 빌려온 '짝꿍특집'으로 대박을 쳤다.
이처럼 방송사간 경계를 허문 프로그램들은 꽤 신선한 재미를 준다. 금기에 대한 도전과 패러디가 긴장감과 웃음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방송사에는 경계가 있을지 몰라도 웃음에는 경계가 없는 법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케이블과 종편까지 수많은 채널이 존재한다. 프로그램의 숫자는 이보다도 더 많다. 이제 시청자들은 MBC의 '해를 품은 달'이 아니라 그냥 '해를 품은 달' 자체로 인식한다. 때문에 방송사의 경계가 느슨해진 건 사실이다. 이런 추세 속에 타사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도 전보다 자유로워졌고 시청자들에게도 친숙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자칫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타사 홍보가 되거나 타사를 비꼬았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라, 제작진 입장에서는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봤던 '해를 품은 달'이나 매회 아이템이 달라지는 '무한도전'이니까 과감한 활용이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런닝맨'을 연출하고 있는 조효진 PD는 "한가인 출연 편의 경우, '해를 품은 달'이 종영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패러디를 할 수 있었다"며 "경쟁사를 부각시키는 내용이거나 방송 중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은 가능한 한 배제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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