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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시작하는 '천재테란' 이윤열, "보답하는 인생 살겠다"

by 남정석 기자
◇프로게이머로 큰 족적을 남기고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윤열은 "그동안 받은 사랑을 보답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말했다.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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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줬던 마우스를 들고 있는 이윤열. 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가난이 싫었던 소년은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얘기에 선뜻 정구채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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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난으로 인해 찾아온 천식. 잠을 못 잘 정도로 숨이 가빴고, 정구를 계속 한다면 죽을 수도 있다는 진단까지 받았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게임은 하나의 탈출구이자 새로운 세계였다. 그래서 잡은 마우스와 키보드. 세상을 잘 만난 덕일까, 아니면 세상이 그를 잘 만난 것일까. 97년 이 땅에 선보인 RTS게임 '스타크래프트'는 e스포츠를 탄생시켰고, 여기서 천재적인 실력을 발휘한 소년에게 세상은 부와 명예를 안겨줬다. 그렇게 10년 넘게 e스포츠를 호령했던 소년, 아니 이제 청년은 30대를 목전에 두고 이제 마우스와 키보드를 내려놓으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천재 테란'으로 불렸던 프로게이머 이윤열(28)은 이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e스포츠의 살아 있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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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열은 '살아 있는 전설'이었다. 이름값은 자신보다 먼저 등장한 임요환에 조금 뒤졌지만, 비공식전까지 포함해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가운데 최다 출전과 최다승을 보유하고 있다. 또 양대 개인리그인 스타리그와 MSL를 각각 3번씩 제패하며 골든 마우스와 금배지를 보유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스타크래프트2'로 전향하기 전까지 '스타1'에서 무려 1157경기에 나와 708승412패, 61.2%의 승률을 기록했다. 2001년 데뷔해 최근까지 11년간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이윤열은 꾸준함과 천재성을 함께 갖추며 한국 e스포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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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중학교 2학년 때 찾아온 천식은 이윤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e스포츠는 그에게 딴 세상이었다. "가난이 싫었던 순둥이 시골 아이에서, 승부를 즐기는 강하고 독한 도시 아이로 바뀌게 됐죠.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은 우승이라는 짜릿함을 제가 어디서 맛 볼 수 있었겠어요."

그렇다면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그에게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이윤열은 두번 생각하지도 않고 지난 2006년 11월 제주도에서 열렸던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결승전을 꼽았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2005년 돌아가시면서 많이 방황하고, 1년 가까이 기나긴 슬럼프에 빠져 있었죠. 아마 그 때만큼 절박하게 연습을 했던 적도 없을겁니다."

이윤열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 아들의 소속팀 선수들에게 빌드를 짤 때 정확히 계산해서 쓰라는 의미로 초시계를 선물했다. 하지만 아무도 활용하지 않아 먼지만 쌓였던 상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돌아온 후 유품이 된 초시계의 먼지를 털어내고 연습을 할 때 반드시 썼죠. 아버지에게 꼭 우승을 바치고 싶었던 이유였습니다."

도전은 내 숙명

2010년 이윤열은 돌연 '스타2'로 종목을 전환했다. 소속팀에 머물고 있었으면 억대 연봉을 보장받고 은퇴 후 지도자로의 전환까지 탄탄대로가 보장돼 있었지만 이를 뿌리치고, 어려운 길을 굳이 택했다.

"경기에 나가 늘 이길 자신이 있었지만, 세대교체가 진행중인 팀에서 좀처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죠. 벤치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스타2'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은 4강까지였다. 체계화된 팀이 아니어서 지원이 거의 없었는데다, 대학교에 복학하면서 학업까지 병행했으니 한계는 있었다.

"그래도 10년전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죠. 너무 설레고 재미있었다고 할까. 그런데 어느새 열정이 식었죠. 전에는 경기가 안 풀리면 금세 회복됐지만, 이제는 한두달이나 걸리더라구요. 어거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은퇴를 결정했죠."

인생의 2막을 열며

이윤열은 지난 3일 '티빙 스타리그' 8강전에 앞서 오영종과 '레전드 매치'를 가졌다. 이날 경기 후 임요환 강 민 박태민 서지훈 이제동 전태양 등 전현직 프로게이머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큰 획을 그었던 동료의 퇴장을 함께 축하해줬다.

이윤열의 인생 2막은 지도자, 그리고 사업가이다. MJ팀에서 선수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는 단장직을 맡고, 인터넷 쇼핑몰인 '나다몰'도 계속 운영할 생각이다. "MJ팀은 현재 선수를 모집중인데, e스포츠에서 배운 경험과 받은 사랑을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년에 군입대도 해야죠. 이제 게이머가 아니라 일반인 이윤열로 할 일이 정말 많은 것 같네요."

이윤열은 자신의 별명 가운데 '벼닉스'('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에서의 벼와 불사조를 뜻하는 '피닉스'의 조합)를 가장 좋아한다. 항상 겸손하면서도 결코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란다. "'有志竟成'(유지경성·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낸다)이란 말을 깊이 새기고 살 것입니다. 그동안 팬 여러분께 너무 감사했고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그 사랑 꼭 보답하며 살아갈 것이니 늘 지켜봐 주세요." 10~20대에 이미 큰 꿈을 이루고 좌절도 맛보며 한층 성숙해진 이윤열의 30대가 궁금한 이유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이윤열이 11년간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으로 지난 2006년 11월 열린 '신한은행 스타리그 시즌2' 결승전을 꼽았다. 오영종을 3대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이윤열이 스타리그 3회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골든 마우스와 트로피를 양 손에 들고 환호하고 있다. 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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