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용모에 너털웃음을 호탕하게 터뜨리던 손현주(47)가 백홍석이 되는 순간 눈빛부터 달라졌다. 심금을 울리는 그의 명연기를 무슨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남의 것을 탐내지 않고 땀 흘려 번 돈이 내가 가진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분들이 갑자기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과연 그 마음이 어떨까요? 개미와 모래알 같은 사람들이 우리 드라마를 봐주셨을 겁니다." 하루 아침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억울한 사연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지만 온통 가시밭길이었다. 다행히 통쾌한 복수가 이뤄지고 드라마의 시청률은 폭등했다.
SBS 월화극 '추적자 THE CHASER'(이하 추적자)에서 백홍석을 연기한 손현주를 14일 SBS 일산제작센터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웃음기를 띠던 그가 잠시 백홍석이 되어 돌아오니 슬픔과 절망에 짓눌린 사람처럼 보였다. 몰입의 힘이었다.
'추적자' 제작 논의는 지난해 처음으로 이뤄졌다. "박경수 작가, 조남국 PD와 작년 9월~10월경에 처음 작품 얘기를 했어요. 그 때 느꼈던 건 일일과 주말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나 편히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혹은 '트랜스퍼'(갈아타는)류가 아닌 오랜만에 정통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겠다는 거였어요. 멜로도 없어 차별화가 가능하겠다 싶었죠."
그는 '추적자'의 성공이 시청자와 배우들의 연령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길 희망했다. "'추적자'에는 없는 게 많대요. 아이돌과 스타가 없고, 연기자의 면면도 젊은층을 확 끌어들일 수 있는 뭔가가 없다는 거에요. '중견 배우들로 월화극이 될 것이냐'라는 물음에 답하기도 했죠. 젊은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도 있어야죠. 그래야 해외에도 판매돼 수익을 창출하죠. 그렇지만 그동안 드라마가 너무 젊은층만을 겨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40대 이상 시청자들의 입맛에도 맞는 드라마가 필요하다고 봐요. 배우들도 역시 갈증을 느꼈을 거에요. '추적자'가 연륜 있는 중견 배우들도 월화, 수목극에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죠."
백홍석이 도망자 신세라 뛰어다니는 장면을 유독 많이 찍었던 그는 "'꽃중년 4인방'(마침 연기자 대기실에 놓인 TV에선 '신사의 품격'이 재방송되고 있었다)이나 방금 전 왔던 소지섭이나 체력적인 부담은 다 비슷할 것이다. 일흔이 넘은 박근형 선배님도 건재하신데 체력은 논할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추적자'의 흥행 비결로 대본과 연출, 연기의 조화를 들었다. "대본이 좀 늦게 나왔지만 작가가 정말 책을 많이 읽고, 직간접 경험이 많은 분 같아요. 필력이 대단하죠. 그에 맞춰 연출도 잘 따라갔어요. 스케줄 문제로 괴롭히는 연기자들도 없었습니다."
세상은 외면했지만 백홍석은 스스로 죗값을 치르고자 했다. 그는 "백홍석은 가질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실을 밝히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아무리 못 믿어도 법은 필요하다는 게 백홍석의 생각일 것이다"고 말했다. '추적자'에선 많은 명대사와 명장면이 등장했다. "주로 박근형 선배님과 김상중씨 장면에서 나왔죠. 그들의 싸움이었으니까요. '이게 과연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싶은 촌철살인의 대사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백홍석 안에 정치가 어디 있겠어요. 딸의 얼굴에 묻은 더러운 때를 아버지의 힘으로 닦아줘야죠."
이정도 인기라면 특별한 성과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상 욕심이요? 없어요. 70~80대 연기자분들이 저평가되는 게 안타까워요. 개인적인 욕심은 박근형 선배님이 한번 우뚝 서는 겁니다. 그 장에서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게끔 한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상은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아야죠." "자격이 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그럼 나도 80살에 받으면 되지 않겠냐. 그 때쯤이면 더 연륜이 묻어나는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껄껄 웃었다.
그는 "근래 몇 년간 감정선을 많이 타는 작품을 주로 해왔다. 다음엔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강동윤 같은 모습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제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불편해져요. 언제나 대중들 옆에 있을 겁니다. 나로 인해 그분들이 울고, 웃고, 즐길 수 있다면 만족해요."
김명은 기자 dram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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