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을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니까요."
우리은행은 2라운드까지 최고의 팀이었다. 8승2패로 '최강' 신한은행과 함께 공동 1위를 달렸다. 만년 약체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경기 전 만난 위성우 감독은 전혀 들뜬 모습이 아니었다. "2라운드를 더 해도 1등을 하고 있으면 그게 진짜 대박"이라며 웃었다.
이유는 바로 3라운드부터 도입된 외국인선수 때문이다. WKBL은 올시즌 리그 흥행과 전력 평준화를 목표로 5년 만에 외국인선수 제도를 부활시켰다. 여자농구는 신한은행이 6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차지하면서 리그의 재미가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수비와 조직력 위주의 농구가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저득점 현상이 일반화됐다. 외국인선수 제도 재도입은 득점력을 높여 화끈한 공격 농구의 부활을 이끌겠다는 신임 최경환 총재의 복안이었다.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우리은행은 외국인선수 제도의 희생양이 될 위기에 놓였다. 위 감독이 엄살을 떤 게 아니었다.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서 2순위 지명권을 얻은 우리은행은 당초 WNBA에서 뛰고 있는 루스 라일리(33, 1m96)를 지명했다. 지난 2005년 겨울리그에서 뛰었으며 높이가 있는, 검증된 선수다.
하지만 라일리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우리은행과 계약하지 않으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결국 티나 톰슨(37, 1m88)을 대체 선수로 영입할 수 밖에 없었다. 티나 역시 2006년 겨울리그에서 뛴 적이 있지만, 라일리에 비해 신장이 작고 고령인 게 문제였다.
위 감독은 "기존 선수들과 호흡을 맞춘 게 고작 3일"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외국인선수 교체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 위 감독은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나도 궁금하다. 일단 경험이 있는 만큼 최대한 현재 우리 팀 컬러에 맞추도록 주문했다. 우리 팀의 장점을 버릴 수는 없지 않나"라며 "외국인선수가 왔다 해도 결국 국내선수에서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2승8패로 최하위에 처져있는 하나외환 입장에선 외국인선수가 희망과도 같았다. 창단 특전으로 1순위 지명권을 얻은 하나외환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국내 무대에서 뛴 나키아 샌포드(35, 1m93)를 뽑았다. 샌포드는 일찌감치 팀에 합류해 한 달 가까이 호흡을 맞췄다.
조동기 감독은 "우리에겐 정통 센터가 없으니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며 "통역이 얘기하기도 전에 먼저 우리 말을 알아 듣는다"고 말했다. 국내 리그를 잘 알고 있는 샌포드가 골밑에서 버텨주면 공격 루트가 다양화될 수 있다고 했다. 꼴찌에 처져있는 팀 분위기를 반전시킬 최적의 카드였다.
경기 내내 샌포드와 티나는 서로 매치업을 이루면서 골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아직 최상의 몸상태는 아닌 듯 했다. 움직임은 과거에 비해 둔했고, 쉬운 필드골을 놓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점차 경기를 치르면서 외국인선수의 진가가 드러나기도 했다. 하나외환은 샌포드를 이용한 공격이 막히자, 또다른 센터 허윤자와 에이스 김정은을 이용해 경기를 쉽게 풀어가기도 했다. 샌포드 역시 적극적으로 볼을 빼주면서 팀에 완벽히 녹아든 모습을 보였다. 반면 티나는 아직 팀의 패턴플레이에 적응되지 않은 듯, 초반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외곽으로 샌포드를 끌어낸 뒤 3점슛을 터뜨리며 팀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경기 초반 주도권은 하나외환이 쥐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3쿼터 한때 1점차까지 추격했던 우리은행은 4쿼터 7분여를 남기고 기어코 동점을 만들고 말았다. 골밑에서 티나와 양지희의 콤비플레이로 리드를 잡은 우리은행은 막판 끈질긴 하나외환의 추격을 뿌리치고 짜릿한 2점차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은행이 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하나외환과의 3라운드 첫 경기에서 56대54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9승2패를 기록한 우리은행은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우리은행 티나는 양팀 통틀어 가장 많은 19득점 14리바운드를 올리며 샌포드(13득점 13리바운드)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한편, 용인에서는 홈팀 삼성생명이 신한은행을 66대51로 잡는 이변을 일으켰다. 신한은행은 삼성생명 외국인선수 앰버 해리스에게 무려 30점 15리바운드를 헌납하며 2위로 추락, 제도 도입 첫날부터 희생양이 됐다.
부천=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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