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이라는 클리쉐를 더 이상 인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훌쩍 성장했다. 두산 유희관 얘기다.
유희관은 2일 잠실 넥센전에서 올 시즌 3번째로 선발 마운드에 올랐다. 올슨과 이용찬 등 선발 자원이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 급하게 '땜방 선발'로 나서고 있는 유희관은 직구 최고 구속이 130㎞에 그친다. 이날 최고 구속도 135㎞. 프로 선수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제구력 하나만큼은 일품이다. 구속이 낮아도 컨트롤만 제대로 된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리 아닌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이가 바로 유희관이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넥센 염경엽 감독은 유희관의 최근 투구 분석표를 꼼꼼이 살피며 "가운데에 몰리는 공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제구가 좋으니, 낮은 스피드에도 불구하고 몸쪽 승부를 거침없이 하는 것 같다"며 경계감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직구와 체인지업으로 곧잘 삼진을 잡아내니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초반에는 유희관의 부담감이 커 보였다. 1회초 서건창과 이택근, 박병호, 강정호 등 넥센 중심 타선에 연달아 안타를 허용하며 3점을 헌납했다. 하지만 이성열을 1루 땅볼로 잡아낸데 이어, 3루로 귀루하던 강정호까지 더블 플레이로 잡는 야수들의 호수비 이후 힘을 냈다.
2회부터 7회까지 이렇다 할 위기 한번 겪지 않는 효과적인 투구로 넥센 타선을 꽁꽁 묶었다. 제구력이 뒷받침 된 130㎞대의 직구와 구석구석을 찌르는 체인지업으로 마운드를 지배한 유희관은 7이닝동안 112개의 공을 던지며 3실점, 데뷔 이후 최다 이닝과 투구수 그리고 데뷔 첫 퀄리티 스타트까지 3개의 기록을 한꺼번에 써가며 호투를 자축했다.
유희관의 호투 속에 타선도 힘을 냈다. 2회 윤석민의 투런포로 3-3 동점을 만든데 이어 3회 민병헌의 투런포까지 터지며 역전에 성공하는 등 장단 13안타로 11점을 뽑아내며 유희관에서 시즌 3승째를 안겨줬다.
경기 후 유희관은 "내 피칭보다 점수를 많이 내준 타자들에게 감사한다. 3회 민병헌의 투런 홈런이 터지며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1회 너무 의식을 했던 것이 3실점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 더 집중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애 첫 퀄리티 스타트 달성보다는 팀 승리와 함께 불펜 투수들에게 여유를 줘 더 기쁘다. 그리고 어제 생일이었는데, 내 자신에게 선물을 준 것 같아 조금은 대견하다"며 웃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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