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고 했다. LG의 4강행. 도저히 틀릴 수 없는 불변의 진리일 것 같았다. 하지만 안팎으로 찌꺼기처럼 남은 일말의 불길함이 있었다. 10년간 반복돼 온 아픈 상처의 기억. 쉽게 치유될 리 없었다. 반 LG 팬들은 여전히 'DTD('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의미'로 LG의 뒷심부족을 암시하는 조어)'를 언급하며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LG팬들은 '그럴리가 없다'고 되뇌면서도 시즌 끝까지 안심하지 못하고 있던 형국.
객관적으로 LG의 4강행은 그 어느 해보다 확률이 높다. 내부적으로는 남은 경기에서 반타작만해도 4강 예상 승수인 70승을 넘길 수 있다. 외부적 환경도 유리하다. 4강 컨텐더 중 롯데, KIA, SK가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반전을 위해서는 남은 경기에서 모두 6할대 이상(SK는 7할대)의 승률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은 둥글다. 인생사 처럼 야구 역시 끝까지 가봐야 안다. 순신간에 거대한 연승의 파도를 타고 하늘 높이 솟구칠 수도 있고, 연패의 쓰나미에 휩쓸려 지금까지 이뤄둔 것이 흔적도 사라질 수도 있다.
실제 시즌 막판 연승, 연패에 의한 판도 변화는 그동안 심심치 않게 일어났던 선례가 있다. 그 연승도 연패가 모두 사소한 곳에서 출발한다. 매 경기, 매 순간을 예방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LG도 불안감이 없지 않았다. 승승장구의 결과에 도취돼 느끼기 힘들었을 뿐 작은 누수의 조짐이 있었다. 심상치 않았던 포인트 두가지? 마무리 봉중근의 구위 저하와 4번 정의윤의 하락세였다. 결과적으로 큰 탈은 없었지만 두 선수의 하향세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철벽 마무리였던 봉중근은 7월 들어 주춤했다. 큰 '실패'는 없었지만 '위기'는 있었다. 7월 한달간 평균자책점이 3.68. 피안타율은 3할6푼7리에 달했다. 출루율은 4할4푼4리였다. 시즌 초에 비해 볼끝에 힘이 살짝 떨어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금 더 세게 던지려다보니 공이 살짝 살짝 가운데로 몰렸었다. 오프 시즌 수술 과 재활, 그리고 예상보다 빠른 복귀. 게다가 데뷔 첫 풀타임 마무리 대기. 체력적으로 힘든건 불가피한 일. 절정의 구위가 살짝 꺾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봉중근은 5일 휴식 후 재충전을 한 뒤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시 140㎞ 후반대의 강한 패스트볼을 미트에 자신감 있게 꽃아댔다. 패스트볼의 볼끝이 살자 브레이킹 볼의 위력도 배가됐다. 타자들이 당황한 기색으로 삼진을 헌납했다. 1위 삼성과의 위닝시리즈. 2승 모두 봉중근 손에 매조지 됐다.
4번 정의윤의 부활 조짐도 반갑다. 그 역시 지금까지 너무나도 잘 해줬다. 풀타임 첫 4번임에도 꾸준한 활약으로 제 자리를 고수해왔다. 덕분에 박용택 이병규 이진영 등 고참 선배들이 앞 뒤에서 부담을 털고 맹활약할 수 있도록 해준 으뜸 공신. 하지만 정의윤 역시 늘 똑같을 수만은 없었다. 체력적으로 조금 지치면서 배트가 살짝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타율도 조금씩 떨어졌다. 김무관 타격코치와 함께 '작업'에 착수했다. 자신도 모르게 퍼져 나오던 스윙을 짧은 궤적으로 빠르고 컴팩트하게 홈플레이트 앞으로 끌고 나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타격에 남다른 소질이 있는 선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4일 잠실 삼성전에서 1-2로 뒤지던 4회 장원삼으로부터 동점 솔로홈런을 날렸다. 몸쪽에 거의 완벽하게 제구돼 미트 속으로 빨려들어가던 공을 군더더기 없는 컴팩트한 스윙으로 마치 끄집어내듯 담장 밖으로 날려버렸다. 타구에 힘을 전달하는 것은 컨택트에 이르기까지 힘의 손실이 많은 큰 궤적의 스윙이 아닌 작은 궤적에도 응축된 힘을 전달할 수 있는 컴팩트 스윙이란 점을 몸으로 보여준 순간. 포수 진갑용도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할만큼 정의윤의 스윙 메커니즘은 완벽에 가까웠다.
마무리 봉중근과 4번 정의윤의 재도약 조짐. 11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는 LG로선 마지막 불안감의 각질이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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