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낙엽이 산천을 수놓고 있다.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임과 동시에 한 해 마무리에 접어드는 때이기도 하다. 따뜻한 겨울 나기를 위한 준비도 이뤄진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가을은 매서운 겨울을 떠올려야 할 눈물의 계절이다.
한국 축구를 이끄는 이들이 볼 대신 배추와 양념을 잡았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KFA)과 홍명보 A대표팀 감독 등 축구협회 관계자 57명은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에서 'KFA 축구사랑 나누기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지난해부터 사회공헌을 위한 봉사활동에 나서기 시작한 이래 세 번째로 실시되는 나눔 행사다. 600여 포기의 김장과 150장의 담요를 준비했다.
구룡마을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과 포이동 끝자락에 자리한 구룡산 아래 형성된 마을이다. 1980년대 초반 도심개발에 밀려 온 오갈데 없는 이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들어진 서울의 대표적 판자촌이다. 1500여 세대 2500여명이 거주하는 큰 마을이지만, 비위생적인 환경과 토지주와 주민 간의 대립 등 바람잘 날이 없다. 마을 어귀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강남의 최고급 고층 주거단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정 회장은 "(마을 인근을) 수 차례 지나 다니기만 했지, 실제로 마을 내에 와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투르지만 따뜻했다. 그라운드에서 볼과 씨름해오던 이들에게 김장은 그저 집안일이었다. 손놀림 뿐만 아니라 정성까지 곁들여져야 하는 게 김장이다. 서투른 솜씨지만 마음을 담았다. 시간이 지나자 제법 김장 모양새가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긴급 호출'된 조리팀과 마을 주민들이 가세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서로가 만든 김장 을 맛보기도 하는 등 여유와 웃음꽃이 피어났다. 최만희 기술교육실장과 정해성 경기분과위원장은 주부 못지 않은 김장 실력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 회장과 홍 감독 등은 협회 직원들과 함께 이날 담근 김장과 담요를 각 세대에 배달하면서 온정을 나눴다. 정 회장과 홍 감독은 거동이 불편해 비닐하우스에서만 생활하는 한 독거노인을 찾아 손을 맞잡고 쾌유를 기원 했다. 정 회장은 "오늘 김장을 처음 해봤는데, 많이 배웠다"고 웃으면서 "김장이라는 게 이웃과 정을 나누는 행사 아닌가. 많은 것을 느꼈다"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홍 감독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김장할 적 배추나 무를 나르던 기억은 있지만, 실제로 김장을 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며 쑥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서투른 솜씨였지만 국민들에게 그동안 받았던 사랑을 이번 행사로 조금이나마 돌려줄 수 있었다는 것에 기쁘다"고 말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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